제목 |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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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10-29 | 조회수2,81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31주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말라 1,14ㄴ-2,2ㄷ.8-10; 1데살 2,7ㄴ-9.13; 마태 23,1-12
오늘은 사제들의 행위가 독서와 복음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제의 한 사람 으로서 살아가면서 그 동안에 행했던 언행을 통해서 얼마나 자주 주님과 신자들 에게 폐가 되고 염려를 끼쳤는지에 대해서 묵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벌써 이 곳에서 2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혹은 제 자신에게 행했던 몇 가지 약 속 가운데 실천하지 못한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면,
* 성당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과 청년들을 방문하겠다는 약속. * 미사 시간에 늦지 않고 좋은 표양을 보이겠다는 약속. * 거짓 없이 살아가며 사람들과 친교를 맺겠다는 약속. * 과음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약속. *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겠다는 약속.
이런 것들입니다. 언제나 어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사 제로서 살아가기에 얼마나 부족한가 하는 점을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신학생 시절에 신학교에는 오솔길 옆에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이라는 제목 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1984년에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서 개최했던 [200주년 사목회의]의 기초 자료 가운데 평신도들이 사제들에 게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설문을 토대로 15개 항목의 희망 사 항들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 기도하는 사제. * 힘없고 약한 자를 돌보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며, 사회정의를 위해 열심히 일 하는 사제. * 검소하며, 물질에 신경을 안 쓰며, 공금에 명확한 사제. * 청소년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며 교리교육에 힘쓰는 사제. * 겸손하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제. * 웃어른에게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말이나 행동에 예의 차릴 줄 아는 사제. * 본당 내 각종 단체를 만들고, 사리에 맞지 않는 독선을 피우지 않으며, 평신도 와 함께 본당을 이끌어 가는 사제. * 교구장 및 장상에게 순명하며, 동료 사제들과 원만한 사제. * 신도들에게 알맞는 강론을 성실히 하는 사제. * 미사성제와 성사집행을 경건하고 예절답게 하는 사제. * 고백성사를 성심껏 주는 사제. * 데리고 있는 친척이나 친한 교우들에게만 매여, 그 사람들의 말만 듣고 움직이 지 않는 사제. * 후배 사제 양성에 마음쓰며 생활하는 사제. * 죽기까지 사제 성직에 충실한 사제.
[마땅하고 옳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그것이 신자들의 뜻이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노력해 오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잘 이루 어지지 않을 때도 있을뿐더러, 어기게 되는 경우 혹은 관심과 노력이 미흡했던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예수님의 지적처럼 [말로써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말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도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 자체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말과 마음과 행위가 도무지 일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언행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겠지요. 과거와 전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늘날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뜻을 간과하게 되 는 경우, 사람에 대한 편견과 독선 때문에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용서하지 못했던 경우, 하느님의 진리를 수호 한다는 명목으로 제 본의대로만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들이 여기에 해당이 될 겁 니다.
독서와 복음은 성직자들의 삶을 한 마디로 봉사와 친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 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 시도록, 그리고 사람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 런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고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일치의 친교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사제로서의 저의 삶을 반성하며 그렇게 살아가고자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직자들만이 봉사와 친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이 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할 삶의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봉사와 친교]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신앙의 결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 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내가 신자이기 때문만도 아닙 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때문이어서도 안 됩 니다.
한 세기가 저무는 이 마지막 가을을 보내면서 우리들 모두가 20세기 안에서 행 했던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 성찰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지 금 이 순간 우리들에게 요청되는 변화와 노력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목표로 21세기를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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