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청하며, 응답하기] (32주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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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선환 | 작성일1999-11-09 | 조회수2,53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청하며, 응답하기> 지혜 6,1-11; 루가 17,11-19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난 나병 환자 열 사람과 만나고 계십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부탁할 말씀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로서 오직 자신들을 구 원해 줄 수 있는 분은 [예수 선생님](루가 17,13)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시키는 일이라면 두 말 않고 하기로 작정 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부탁한 후에 예 수님께서 곧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14절) 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기 위해서 길을 나선 것으로 보아 그들의 결심이 대단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제에게 몸을 보인다는 것은 이전에 얻었던 질병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되었음 을 증명 받기 위한 것임을 전제할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제에게 몸을 보여 라] 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 자신들이 나을 수 있을 것임을 굳게 믿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사제에게 가는 도중에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 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 명이 같이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하느님 의 찬미하기 위해서 돌아온 사람은 이방인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들이 갖는 신앙의 특성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 씀 속에는 뭔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열 속에서 쓰라 린 패배를 맛 본 다음 최후의 보루로서 주님을 찾아오는 나약한 인간 본성이 잘 그려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 한 사람, 이방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하느님을 찬 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전언을 통해서, 나머지 아홉 명은 예수님을 찾아올 때의 마음과 치유를 통해 깨끗해진 다음의 반응이 대 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갈 때에는 [이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분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라고 하는 애절한 마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아 니면 말고, 아니면 할 수 없고]하는 자포자기와 얼렁뚱땅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진정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 하지 않고서도 치유의 은사를 입을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은 이방인 한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서 돌아온 다음에 벌어지 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지만, 오직 그 한 사람에게만 구원을 허락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소상히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와 자 신의 전 존재를 송두리째 변화시켜 주셔서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주님을 향해서 찬미와 감사를 드릴 줄 모르는 것은 자녀된 도 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실을 모르는 차 원을 넘어서서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분을 외면하는 오만과 방종이었음을 깨 달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끊임없이 치유를 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과 이웃에게 죄인임을 고백하고, 굳은 믿음으로 주님의 자비를 간청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 도록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사랑에 굶주린 사람처럼 무언가를 청 하는 것에만 할애했던 시간들을 나눠서, 내가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며 사랑에 응 답하는데 사용할 줄 아는 지혜가 정녕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선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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