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호긋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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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재연 | 작성일1999-11-16 | 조회수2,629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 찬미예수님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고린2,15)
저는 얼마전 가까운 친지에게서 식사 때에 성호를 긋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친지의 부모님은 모두 외교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식사 때마다 성호를
긋는 행위에 대해 못마땅해 하시다가 마침내, "보기 안 좋으니, 그러지 말라"고 꾸지람을
했다는 군요. 사실 이 문제는 우리 주위에서 가톨릭 신자면 누구나 겪게 될 가능성이
있는 평범하고도 자주 있는 사회생활의 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저도 세례받은 후
몇년간 똑같은 문제로 저희 부모님과 관계가 몹시 어려워진 적이 있었습니다. 외교인인
저의 아버님은 "식사 때마다 무슨 교통정리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나무라십니다.
사실 저의 성호 긋는 모습이 매우 거칠고, 서두르는 편이었거든요,
저는 신앙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하면서
강박관념에서 성호를 긋다보니, 마치 교통 순경이 네거리에 서서 교통정리하느라 팔을
휘두르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가리키는 것과 같이 보였나 봅니다.
그후 저는 얼마간의 성찰을 통해,
식사 때엔 일단 경건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성호를 정성되이 아담하게 긋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로는 저의 아버지도, 아니 다른 외교인 친척분들도 제가 성호경 바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 느낌으로는 그들이 저의 진지한 행동에서 일종의 경이로움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과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오늘 독서말씀(마카베오 하 6, 18-31)에 대한 <매일미사>의 해설에서도
"드러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하느님의 법을 존경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태도는 마음의 확신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호긋기는 우리가 가톨릭 신앙인임을 드러내는 가장
간단하고도 용감한 신앙행위라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돼지고기를 뱉어 버리고 율법을 증거하며 피를 흘리며
죽어간 엘르아잘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기도 한 ’녹색순교’라고나 할까요.
저는 오늘도 식사 전에 간단하지만 분명하고 아담한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맛있게 식사하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저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잔잔하고 은은하게
풍겨나가기를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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