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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있는자의모습(20일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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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우진 쪽지 캡슐 작성일1999-11-20 조회수2,469 추천수5 반대(0) 신고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이나 대부분의 백성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율법 안에 부활에 관한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죽은 이들의 부활을 부정한다.

 

 근데! 오늘 복음은 마치 그들이 그 부활을 인정하는 듯 예수님께 지상에서 일어나기 힘든 사건(어느 여자가 7형제와 계속적으로 부부의 인연을 맺는)을 통해 죽은 이들의 부활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기에 그 사건을 가소롭게 여겨서 비꼬고 있는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이라고 하는 사건을 단지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계속되는 사건’으로 만 보고 있다.

 

그러나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완성이고 성취(FULFILLMENT), 즉 우리가 삶속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모습, 즉 성서가 가르쳐주고 있는대로 "천사와 같이 되어"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이고 살아있는 상태에 대한 체험이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그와 같은 부활을 이 세상에서도 "미리"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바로 부활 신앙이다.  그것이 없다면 바로 "앙꼬없는 찐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그래서 우리들은 죽음뒤에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시공간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그 사건을 "희망하며" 살아가는 이들이고 그 희망을 지금 맛보기 위해 그리고 죽음뒤에 있는 완성을 위해"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실패와 성취가 직선상의 개념이 아닌 성취뒤에 또 다른 실패가 닥쳐오기도 하는 돌고도는(?) 뒤죽박죽으로(?) 계속되는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계신 하느님"이 계시기에 이 모든 것들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실패마저도 행복한 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분이 단지 죽은 이들만을 위한 하느님이라면 그 모든 것들은 역동성보다는 정지 상태가 더 어울릴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있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실패와 성취가 혼재나는 삶의 여정안에서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 서는 것", 즉 그 부활 사건을 희망하고, 그 사건을 위해 사랑하며, 그 사건을 믿음으로써 가능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비록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실패 투성이의 삶일지라도 생기 발랄하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하느님 앞에 서고자 노력하는 것이고, 그 자체로 하느님앞에 서있음을 제험하는, 바로 살아있는 모습이 아닐까?

 

젊은이들에게 살아있는 교회, 생기발랄한 교회의 모습,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살레시오 회의 창립자 성 요한 보스꼬(=돈 보스꼬)는 "우리에게 있어서 성덕이란 기쁘게 지내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기쁨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본질적인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기쁜 하루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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