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3주일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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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정훈 | 작성일1999-12-11 | 조회수2,67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벌써 대림3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큰 기쁨이 우리 가운데 오실 그 시간까지의 준비가 아직 부족하기만 한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언제나 준비는 부족하고 시간은 많은 것만 같지만 지내놓고 나면 후회만이 남아버리는 오늘입니다. 그런 오늘 우리 가운데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 아픔과 후회와는 전혀 다릅니다. 찟긴 마음을 싸매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주는 그 분께서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시니 언제나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우리를 충동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원천은 하느님의 진실하심과 성실하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미 2,000년전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이미 와 계신데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 뿐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하느님으로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이 세상 가운데서, 이 세상 사람들 안에서 늘 하느님을 만나고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합니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옵니까?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차리는 것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있는 가장 가난하고 미소한 형제를 형제로 맞아들이는 마음에서부터 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성당에 와서 차를 주차할 때, 내 급한 것을 생각지 않고 나 보다 더 후에 성당에 와서 주차할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이들에게 따스한 웃음을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받들고 섬기며, 형제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작은 마음의 차이, 이 작은 생각의 차이가 바로 하느님을 우리 가운데 살아있게 하고 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얻어 만날 수 있게 해 줍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이미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우리 가운데 하느님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자선주일입니다. 형제들을, 제 탓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가난으로, 고통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웃을 내 형제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향해 구체적인 내 자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만 주장하지 아니하고 기꺼이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손. 그렇게 그 형제들을 내 안에 받아들이십시오. 하느님께서 함께 살아오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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