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든것은 다 주님의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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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연 | 작성일1999-12-22 | 조회수2,644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주님은 먼곳에서 우리를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바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그러한 행적은 구약성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인상 깊은 대목은 이사악의 아내를 얻기 위해 아브라함의 종이 하느님께 기도 드린 장면, 레아와 라헬이 아이를 얻기 위해 하느님께 비는 장면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도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주님께서 주관하신 대목들이다. 우리는 결혼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 여기고 또 아기는 그저 생물학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신앙인이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배우자도 주님이 주시고 자식도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당연히 진지하게 기도로 청해야 한다. 생활 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바로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한나의 일화는 내게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첫애를 어렵게 얻었기 때문에 기도도 많이 했다. 당연히 주님이 주신 선물로 감사드린다. 하지만 그 애를 바로 주님께 바치기는 어렵다. 주님이 주신 것은 주님의 것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주님이 주신 것은 이제 내 것이라 여긴다.
언젠가 탈무드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부부가 귀여운 자식을 둘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애들이 놀다가 다쳐서 죽은 것이다. 그 부인은 남편이 돌아오자 이렇게 말을 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귀한 보석을 둘을 맡기시고 어느날 달라시면 저희가 바로 돌려줘야 하겠죠?" 남편은 "물론이지." 라고 하자, 부인은 주님이 주신 보석이 바로 자신들의 자식인데 그들이 주님 품에 돌아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옛날에는 수긍이 갔다. 자식을 낳아 본 지금의 나는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한나가 사무엘을 하느님께 바친 것은 정말 목숨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주님의 아들로 쓰여질 수 있도록 바치는 것도 나로서는 어렵다.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성모님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자식이 그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을텐데 얼마나 새록 새록 가슴이 아프셨을까. 하지만 한번도 내색을 안하셨으리라. 그리고 그 고통을 범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셨을 것이다. 그래도 십자가 아래서 죽은 아들을 안으신 성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하셨을까?
자식도 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차라리 돈을 달라시면 드리겠는데 자식은 왜 선뜻 내놓지 못할까? 별 수 없이 나도 인간적이 측면이 앞서는구나. 주님께 내 것을 드린다는 것. 아니 내 것은 없고 모두 주님 것일텐데… 주님께서는 항상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데 내놓기를 주저하는 내 자신을 한번 반성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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