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이 깃든 단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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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성묵 | 작성일2000-03-14 | 조회수2,46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사랑이 깃들은 단식
6 년전 쵸코렛홀릭(중독?) 이었던 내가 사순절동안 쵸코렛을 먹지 않고 견디느라 무 척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밥은 잘 안 먹고 쵸코렛과 커피를 즐기며 일하는 나에게는 쵸코렛없이 40일 살았다는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보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어려움 처럼 느껴진다. 또한 하느님앞에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의 사순절 결심의 동기는 나 자신이었다. 쵸코렛을 많이 먹어서 밥이 안 먹히어 끼 니를 거르는 것이 내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것과 이 기회에 나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 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하루에 쵸코렛 7-8 온즈를 먹어오던 나에겐 무척 힘드는 일이었다. (담배나 술을 끊는 것과 비슷하리라.) 사순절 끝나기를 학수고대했다. 40일 간 나와의 투쟁 결과로 쵸코렛 먹는 양이 많이 줄었고, 따라서 밥을 좀 더 먹게 되었으 니, 나의 의지력에 대해 만족감도 얻었다.
허지만, 단식의 의미를 왜곡하였다는 생각때문에 주님앞에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진다. 먹고싶은 것을 안 먹고 참는 고통이 어찌 배고픈 고통에 비할까마는 쵸콜렛 단식을 다 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그것이 아주 힘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식의 목적이 하느 님과, 이웃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40일동안 나 자신의 의지력을 시험해보려는 자만 심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그렇다보니, 사순절 동안, 나의 생활은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영적 상태에 초 점을 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든 상태에서 빠져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육의 상태 에 짓눌려있었다. (물론 40일간의 쵸코렛 값을 좋은곳에 썼다해도, 나에게는 별 의미 가 없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돈이 없어서 쵸코렛을 희생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즐거운 자리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고통 의 자리에서 함께 고통을 나누는 사랑에 의거하지 않은 단식은 교만과 허례허식을 자아 낼 수 있단다, 또한, 사순절동안 즐기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이웃의 사랑에 두지 않는 다면, 자기 학대에 불과한 것이다."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단식을 위한 단식이 아니라, 사랑 을 나누는 단식을 일러주시는 것이 아닐까? 나의 배고픔은 배고픈 사람을 위해, 나의 고통은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바쳐져야 함을 다시 깨우쳐주신다. 단식의 때는 사순절 만이 아니리라. (단지 어느 계기가 있으면, 실천이 쉬워지기에 사순절 때 단식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된다.) 이웃의 고통과 기다림/희망 속에 나의 사랑의 표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주님, 사랑의 단식이 어떠한 것인지,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가르쳐주십시오. 단식으로 제 마음이 당신께로 더 향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단식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생기게 된다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단식이 불우한 이웃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는 마음으로 늘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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