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적을 볼 줄 아는 신앙인(사순 1주 수)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주일미사에 빠지면 대죄인가?(3) | |||
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3-15 | 조회수2,36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00, 3, 15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루가 11,29-32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
그 때에 군중이 계속 모여들자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하며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심판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묵상>
우리는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던가,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때, 쉽게 '기적이나 요행수'를 바라곤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기적이나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군중에게서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어진 삶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던 군중은 예수님에게 특별한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기적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기적은 군중이 원하던 기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기적을 올바로 보기 위해 먼저 요나의 기적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피해 달아나던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먹혔지만,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맡김으로써 살아났습니다. 바로 이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죄악에 물든 체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외침을 듣고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삶의 습성에 젖어 도저히 변화될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변화된 것', 이것이 바로 '요나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적도 바로 이 기적입니다. '하느님과 단절된 채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온전히 주님의 품으로 다시 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적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져줌으로써 이기는 것, 죽음으로써 사는 것, 그리하여 완고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실 기적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힘을 과시하거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로서의 기적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의 기적은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성서 묵상과 기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 갈 때, 우리는 바로 예수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기적 자체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을 절대화함으로써 이 세상을 점점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질 문명 숭배와 소비주의로 말미암은 인간의 도구화, 생태계의 황폐화, 신자유주의의 팽창에 따른 인간 사회의 비인간화 등등, 이 모든 것은 인간 능력의 절대화에 따른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기적은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 기적을 온 몸으로 증거하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섬세함', 주님께 자신을 내어맡기는 '믿음',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을 이루는 도구로 세상안에 자신을 던지는 '용기'입니다.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 주고 새 마음을 넣어 주며 새 기운을 불어 넣어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에제 36,25-26)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