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엇을 구할 것인가?(사순 1주 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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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3-17 | 조회수2,32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00, 3, 16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7,7-12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저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묵상>
우리 신앙인들은 희망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무 조건없이 받아주시리라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우리의 간절한 희망을 담아 기도하기를 권하십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작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주신다.'는 사실보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청해야 하는가'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으며, 어디로 들어가기 위하여 문을 두드립니까? 우리 자신의 부유한 삶이나 안정적인 위치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워주시기 위해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사람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주고자 하시며, 우리가 바로 이러한 세상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나'와 '너'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지 않고 '우리'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바라봄으로써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와 '너'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잣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잣대와 '너,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잣대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잣대는 자기가 이로운데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잣대를 하나의 잣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하나의 잣대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입니다. 모든 사람은 우리 자신의 평가 기준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의 눈에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을 자기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이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하느님을 믿은 신앙인의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나'와 '너'라는 구별을 넘어서 참된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모든 사람이 참된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구하고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주님께서 내려주신 사랑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이기심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커다란 문을 허물어 주시기를 희망하며 끊임없이 이 문을 두드리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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