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해의 걸림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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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성묵 | 작성일2000-03-18 | 조회수2,964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마태복음 5.20-26 24절: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 라.
화해의 걸림돌
미국생활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익힌 것이 있다. 상대방이 못마땅하고 밉더라 도, 상대방 때문에 화가 치밀어도, 그에게 겉으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일상 대화 에서는 상대방에게 거짓이 있음을 알아도 앞에다 대놓고 거짓이라고 추궁하지 않는다. (물론 거짓이 밝혀지면 거짓을 말한 사람은 큰 죄인 취급을 받지만 누군가가 밝혀내기 까지는 함부로 거짓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겉으로 친절한 이런 태도 가 이중 인격자의 한 부분으로 부정적인 면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또 한편 사회적/상 호관계적 대화 기술이라고 긍정적으로 봐 줄 수도 있겠다. 미국에서 요구되는 간접적 인 대화 기술은 이웃과 맞대고 싸우기 싫어하는 내 근본 성격과 부합이 잘 되는 것 같 다.
그런데 복음의 말씀은 이런 간접적(?) 대화의 양식이나/기술이 하느님 안에 진정한 화 해를 이루는데 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내게 경고한다. 겉으로 서로 공손히 대하기에, 궁지에서 빠져나갈 틈을 주며 대화하기에, 잘못을 봐도 맞대놓고 면전에서 면박을 주지 않기에, 언성을 높이어 싸우지 않기에, 난 상대방과 껄끄름한 것이 있어도 화해의 필요 성을 못 느끼는 상태에서 살고있음을 일러준다. 상대방의 잘못/못마땅함을 (적어도 겉 으로는) 봐주니까 자신의 잘못도 (남이 알아차리던 못 알아차리던) 그냥 넘어가게 되는 편리함에 익숙해지었다. 서로 속아주며 사는 삶에 능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은 간접적 대화 양식은 죄에 대한 면역을 키워주는 위험성이 있음을 내게 일깨워준 다.
마음이 사하면 얼른 화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화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흔 히는 다시 상처받지 않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 에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과의 화해에 앞서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가면을 자신 앞에서 벗겨야 하는 것이 다. 그리하여 얼룩진 자신, 죄에 대한 면역으로 굳어진 자신을 바로 보아야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두려워 화해의 필요성마저 부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난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너의 좋은 것들에 대해선 대견해하며 받아들이고, 너의 올바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선 바로 잡아 받아들인단다. 네가 오로지 해야 할 일은 가면을 벗는 것이다. 그 가면을 벗고 자 신을 직시하거라. 너와 너자신의 만남에서 겸손해짐으로서 진정한 화해가 뒤따르게 된 단다."
주님, 저의 가면을 벗기자니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허지만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서 수난의 예수님을 찬미하게 되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거미줄과도 같은 저의 가면을 걷어내고 진정한 뉘우침으로 이웃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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