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Yes)" 체험(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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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0-03-25 | 조회수2,460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2000, 3, 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복음 묵상
루가 1,26-38 (예수 탄생의 예고)
그 때에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시어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되겠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들 하였지만, 그 늙은 나이에도 아기를 가진 지가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은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묵상>
우리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이하여 두 가지 일을 기념합니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신다는 것을 알려주셨음이요, 다른 하나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응답을 통해 성모님께서 주님의 구원 업적에 함게 하는 거룩한 일꾼이 되셨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인간에게 다가오시고 인간은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함으로써 구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구원 역사에서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인간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혼자서 일을 하시지 않고 항상 인간을 통해서 구원 업적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앞으로 다가올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고 구세주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날'인 동시에, '주님의 구원 사업에 함께 하기 위해 우리의 다짐을 되새겨 보는 결의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결의의 날을 맞이하여 두 가지 저의 체험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1985년에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386세대라면 대부분 동의를 하시겠지만, 그 당시 대학생들은 참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 대학생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학생 운동의 핵심 세력은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사회에 대해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교내외 시위가 있다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했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를 하면서 학교 활동을 하는 것이 버거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가지가 어떤 면에서는 저를 지탱해주는 기둥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학교에서 큰 싸움이 있었고, 저는 최루탄 가루가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다보면 성당을 지나게 되어 있었는데, 무심결에 성당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출신 본당의 성당 제대 앞에 십자 고상은 제가 특별히 좋아했던 고상인데, 하얀 색 석고로 만들어진 비참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저는 성당에 들어가서 이 예수님을 향하여 온갖 한탄을 다 늘어놓았습니다. "왜 똑같이 대학을 다니는데, 누구는 시위를 구경하고 있고, 누구는 최루탄 뒤집어쓰면서 싸워야 합니까? 누구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누구는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합니까? 힘들어 죽겠습니다. 당신만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뭐라고 말 좀 해보십시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불평을 예수님께 털어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었지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는 가느다랗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듯 했습니다. "잘 살고 있구나. 힘을 내거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자아 도취에 의한 환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진한 예수님 체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앙에 따른 사회 참여에 더욱 힘차게 투신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던 이면에, 그리고 직장 생활 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된 이면에 바로 이 날의 체험이 자리잡고 있고, 제가 뒤늦게 사제의 길을 걷게 된 이유에도 이 체험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체험은 사제 서품식 때의 것입니다. 사제 서품식 때 서품 예정자들이 제단 위에 엎드리고 성인 호칭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 있습니다. 서품식을 보는 이들은 이 시간에 가장 가슴이 미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서품 예정자들에게는 더 하지요.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갑니다. 지나 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자신이 주님의 사제로 살아가면서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기도합니다. 저는 서품식장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성인 호칭 기도가 시작되면서 제단 위에 엎드려서도 마땅히 기도할 것을 정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갑자기 마음 속에서 "순교하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순교가 과거 박해 시대의 순교와는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순교에 대해서 말해왔으면서도 정작 내 마음안에서 이 기도가 튀어나왔을 때는 기쁨이나 영광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주님, 이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을 기도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네 마음에서는 계속해서 "주님, 순교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성령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 주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나를 대신해서 바치시는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주님, 제게 순교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 후에 마음이 오히려 맑아지고 왠지모를 비장함과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제 자신이 약해질 때 이러한 체험들, "예"라고 했던 저의 응답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다시금 제 자신을 추스르곤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주님께 드렸던, 주님의 뜻에 따르려 했던 "예"라는 응답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 역시 주님의 뜻을 거슬러 제 뜻대로 했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예"라는 응답보다 "아니오, 저 못해요."라고 했던 경우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저의 "예"라는 응답을 기꺼이 받아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벗들도 자신의 체험을 한번 기억해 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특별히 "아니오, 못하겠습니다."라고 응답했던 경우보다 "예"라고 응답하고 주님의 뜻에 따랐던 체험을 말입니다. 이러한 기억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더욱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버겁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여정에 지치고 힘이 들 때 이러한 기억은 주님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위로와 격려, 힘과 용기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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