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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인 우리(부활 2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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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05 조회수2,596 추천수11 반대(0) 신고

부활 2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요한 6,1-15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서 많은 군중을 먹이시다)

 

그 후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물러가셨다. 많은 군중이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징(이적)들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앉으셨다. 마침 유대인들의 축제인 해방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눈을 들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로 오는 것을 바라보시고 필립보에게 "우리가 어디서 빵을 사다가 이들이 먹도록 하겠습니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를 시험하시려는 것이었고 당신은 자신이 하실 바를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대답하였다. "각자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려면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빵도 이들에게는 넉넉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들 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기인 안드레아가 예수께 여쭈었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을 앉게 하시오"라고 말씀하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앉으니 남자들의 수효가 대략 오천 명이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빵을 드시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자리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고 나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들을 모아들이시오" 하고 이르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아들였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그 조각들로 열두 광주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이적)을 보고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데려다가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당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묵상>

 

사제 서품을 받은지 10개월, 그리고 본당에 부임한지 5개월이 된 요즈음, 사제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배 신부님들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들도 제 눈에는 힘들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아직 많은 부분에서 미숙하기 때문이겠지만, 내심 새신부로서 열정이 있기 때문이려니 하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 밀려오는 답답함을 씻어낼 수 없습니다.

 

제가 느끼는 답답함이란 보좌신부로서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하는 사목 생활에서 열심한 신앙인들 사이에 느껴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갈등과 벽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때때로 이러한 갈등과 벽 앞에서 사제로서 제가 무력하게 느껴지기에 다가오는 답답함일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청년 신앙인들을 보면서 이들과 함께 하는 사제로서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단체와 단체, 그리고 한 단체 안에서도 이래 저래 갈라진 모습을 볼 때면 제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님의 사제로서 제대로 생활해 가고 있는지 회의를 가지기도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청년 활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문했던 것이 '왜 청년 단체들 간에 갈등과 벽이 존재해야 하는가? 왜 이러한 갈등과 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가?  특히 다른 청년 단체들과 주일학교 교사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원래 있어왔던 것, 아니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어느 본당이나 이러한 문제가 있어왔기에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린 이러한 문제를 애써 끄집어서 생각해보고 싶은 까닭은 이러한 모습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만하게도 저는 첫 소임지인 이곳에서 지금까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청년 단체들의 활성화를 위하여, 단체 사이의 갈등과 벽을 허물기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제 눈의 안경이라고 어느 정도 변화되어간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근래 상황의 변화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추져 있던 것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청년들의 속내를 감지하면서,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문제를 감춘다고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추어진 만큼 점점 더 썩어들어가겠지요. 오히려 지금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 유일한 해결책을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함께 모인 곳, 그리고 그 모임이 교회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중심에 없다면 교회는 여타의 모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과 희생이 모임의 구심점이요 모임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 자체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교회가 아니면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가장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임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죠.

 

참으로 예수님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한 아이가 보잘 것 없는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은 사랑의 나눔이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희생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참된 응답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먹을만큼의 양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풀어 놓을수는 없었습니다. 조금밖에 안되는 것을 내어 놓아봤자 서로 먹겠다고 싸움이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내어 놓지 않은만 못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먹어치우면 다음날 계속해서 이 여정에 참여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는 타당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들은 분명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이나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은 결코 어떤 이유로도 유보될 수 없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과 희생을 가지고 당신의 기적을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봅니다. 우리는 하나의 신앙으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좀 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자 교회 안에 여러가지 성격의 단체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열심히 생활합니다. 단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일하면서 단체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체의 발전이 교회 전체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단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단체원이기 전에 교회 구성원, 신앙인이라는 것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사랑의 나눔과 희생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가지기 보다는 단체원으로 가지는 특수성에 연연한다면, 우리는 커다랗게 잘못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배고파 하는 군중을 끝까지 한데 모으시려는 예수님의 태도와 이들을 흩어 당장의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제자들의 태도 중에서 우리가 지금 취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요?

 

전체를 위해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은 한 아이의 행동과 자신의 것은 손에 쥐고서 전체 안에 남아 있고자 눈치를 보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 중에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무엇인지요?

 

우리는 한 아이의 작은 행동이 모든 이들을 변화시켜 사랑과 희생의 공동체를 일구어 낸 예수님의 기적을 믿고 있는지요? 진정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믿는다면, 당장에는 다른 이들이 나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나의 나눔과 희생이 쓸모없고 나는 우스갯감밖에 되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용기있게 자신을, 자신의 단체를 내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따르지 않아 결과적으로 자신만 희생하고 그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개인 사이의, 특히 단체 사이의 벽을 허물고 갈등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내어놓는 것 말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교회임을, 우리가 교회에 속해있음을, 그리고 교회가 이 세상의 참된 빛과 소금임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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