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부활3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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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인찬 | 작성일2000-05-06 | 조회수4,067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 몇 해 전에 "밥짓는 시인 밥퍼주는 사랑"이라는 책이 장안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 책을 쓴 저자는 온갖 매스컴을 탄 적이 있었다. 최일도 목사라는 사람이 어느 수녀님을 열렬히 사랑해서 둘이 결혼했고, 그들은 지금 청량리 사창가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불우한 이웃들을 돌봐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수녀님이 목사님과 결혼하였다는 특이한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을 산 것이었지만 제목만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한 인간의 일이라고 소홀히 생각되지 않기에 나도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있는 그 책을 읽어보았지만 기대만큼 내용은 깊이는 없었던 것 같다. 흔히 베스트셀러라고 이름 붙은 책들이 그 깊이는 없고 오히려 얄팍한 상술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하니 그 꾀임에 빠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스물 아홉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이라는 베스트 셀러이다. 서강대 총장신부님과 결혼한 조안리라는 여자가 자신의 사랑담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자서전을 쓴 것인데 역시 신부님의 파계에 관계되어서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역시 그 책의 인기도 길게 가지는 못하였다. 작품성 있는 내용이 아니라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 베스트 셀러의 수명은 단명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책들은 유명세를 타게 되어 많는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출판사는 적극적으로 발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책들을 보는 우리의 관점에 부정적인 면이 보여도 최일도 목사나 조안리라는 사람이 수녀님과 신부님을 사랑한 그 정성은 인정해야 한다. 세인들의 편견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사랑을 쟁취하기까지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뼈아픈 노력들의 결실이 이루어졌다 것을 단지 나쁘게만 몰아부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이들에게서 사랑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는 수고를 해야 했는지를그냥 지나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마지막 목적인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신앙생활은 백미터 달리기 보다는 마라톤과 같다. 백미터 경주에는 결승선의 흰 테이프가 보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달리며 이내 골인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며 알고 있듯이, 그저 앞 뒤 보지 않고 날마다 신앙생활에만 매달린다고 십자가의 여정 없이 곧 부활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의 인생은 고통의 바다와 같다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잠시 살다가는 인생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기 힘든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의 암선고를 받고 어쩔줄을 몰라하며 나에게 기도를 청하는 분들을 보면서 인생이 너무 가련하게 느껴진다. 백년해로 해보자고 신혼 첫날밤에 굳게 약속했던 부부의 맹세를 지켜주시지 않는 하느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대개는 그동안 열심히 신앙생활 해오던 것에 회의를 품게되고 더 나아가서는 신앙을 버리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신앙생활이 백미터 경주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마라톤 경주와 같다고 생각한다. 단축 마라톤을 뛰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도중에 심장이 터질 듯 고통스러운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게 된다. 작년 가을에 대화면 체육대회에서 대화 2리 대표로 마라톤을 뛰게 되었다. 동네에서 내가 가장 젊은 남자이기 때문에 이장이 부탁해서 출전했다. 평소에 아침 조깅과 테니스를 했기 때문에 완주를 할 자신은 있었지만 막상 출발한지 10분이 되자 심장이 아파오고 숨이 차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같이 출발한 선수들이 걸어가기도 하고 차라리 그만두어 버리는 것이 보였다. 포기하면 고통스러운 순간은 면할 수 있겠지만 체면도 있고 해서 이를 악물고 조금 더 뛰어 가니 좀 편안해 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갈등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까 어느새 반환점을 돌게 되고 돌아오는 길은 결승선에 대한 희망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적어졌다. 마침내 운동장에 들어서니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려온다. "대화성당 신부님이 7등으로 완주하셨습니다. 박수를 부탁합니다." 마라톤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기쁨은 끝까지 완주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고통의 바다와 같은 인생여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 다가온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 고비에서 포기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일 것이다. 신자들이 보기에는 사제가 되면 가족이 없으니 아무 걱정없이 마냥 행복하고 편안한 일만 있을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를 비롯해서 전국의 시골지역에 살고 있는 신부들은 일인 5역을 하면서 살고 있다. 사무장, 식복사, 운전기사, 본당수녀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까지 해야 하는 사제생활이 보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가끔 밥을 지어서 먹다가 문득 나의 삶을 뒤돌아보면 초라한 시골 노총각의 궁생한 처지와 별다를게 없다는 허무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면서 자취생활을 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신부가 되어서도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내가 결국 밥해 먹고 빨래해 입으면서 살려고 신부가 되었는가? 나도 장가들어서 이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면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상념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사제로 서품되었을 때 각오를 회상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서 나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일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체념하며 4년을 살았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런 나에게 요즈음 너무 많은 은총을 주셔서 얼떨떨하기만 하다. 공소로 전락하게될 운명에 처할 정도고 성전건축도 전혀 불가능하게 보이던 시골성당이 수많은 은인들의 도움으로 지어지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뜻하지 않게 예술적인 성당으로 꾸며져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유명세를 타기 때문이다(소문보다는 좀 기대에 못 미치니 나중에 실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 루가복음 사가는 부활하신 주님은 실제로 뼈와 살을 가진 분이었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부활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주님은 당신의 기나긴 십자가의 여정을 마치셨다. 그 결과가 부활의 영광으로 나타난 것이다.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시는 장면은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인간이셨음을 증명해 보이신 것이다. 일년동안 땀흘려 농사를 지어야만 가을에 알찬 열매를 거둔다는 진리를 다시 마음에 새기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간 순간 포기하고 싶은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다시 힘과 용기를 내어서 우리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자. 그러면 우리의 수고를 헛되이 여기지 않으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도 언젠가 ’알렐루야’ 노래하며 부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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