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당문을 닫으며 ...(성소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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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인찬 | 작성일2000-05-14 | 조회수3,852 | 추천수32 | 반대(0) 신고 |
성당문을 닫으며
어둠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주일 저녁이다. 낮에 미사에 빠진 교우들이 혹시 저녁 미사에는 나오실까 하고 기다렸는데 한 분도 오지 않으신다. 아마도 굉장히 바쁘신가 보다. 농사를 짓는 교우들은 당연하지만 요새는 민박을 운영하는 분들도 주일미사를 자주 권하신다. 오죽하면 미사참례를 못했을까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낮에 열어두었던 창문들을 닫는다.
그러나 성당 문만은 열어두고 싶다. 혹시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누군가 찾아와서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데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냥 돌아갈 것이 때문이다. 성당 문을 닫고 나면 한 낮에는 세상을 향하여 활짝 열어두었던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제의 일과는 낮과 밤 구별이 없는 것인데, 밤이라고 성당문을 닫는 순간은 하루의 일과를 끝낸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 넓은 성당에서 홀로 지낸 것이 벌써 5년째이다. 다른 사람들은 혼자 있으니 쓸쓸하지 않느냐고 물어오지만 나는 이곳에서 단 하루도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처음 부임해서 성당 뒤켠에 있는 방을 수리해서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낮이면 신자들과 함께 했고, 밤이면 대운동회를 벌이는 쥐들과 함께 했다. 그러다가 평생 소원이 새성전에 대한 꿈이신 할아버지 할머니 신자들의 소망을 들어드리려고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 열 한 곳의 성당을 돌아다니면서 구걸강론을 하느라고 2년을 보내니 새성전이 지어졌다. 이제 한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처음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예술성당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찾아와서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요즘 지내고 있으니 외로움을 느껴볼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오늘도 서울 역삼동 성가대 ’vox dei’(하느님의 소리) 32명이 일일피정을 다녀갔다.
초청을 해도 올까말까 하는 서울 큰 성당의 성가대는 이곳에 자발적으로 왔다. 주일미사는 그야말로 은혜로웠음은 물론 그분들은 지극한 주일헌금까지 봉헌 주신다. 덕분에 주일헌금이 평소에 두 배가 되었다. 나는 봉을 잡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성당을 찾아주신 이분들에게 나는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주일미사가 끝나고 성모회에서 준비한 나물밥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일일 가이드가 되었다. 산책겸 가벼운 등산으로 강원도 산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면서 여러 가지 나물들도 가르쳐 주었다. 갖가지 취나물과 두릅이 달려있는 나무를 가르쳐 주었더니 생전 처음 보았다며 신기해한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삶인데 서울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인가 보다. 그리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서 특강을 했다. 나는 이 시골성당에 와서 세 가지를 느끼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런 강의를 했다.
먼저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되찾고 돌아가시기를 바란다. 대도시의 생활은 잠시도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없게 만든 지 오래다. 우선 차를 타고 시내를 나가보면 저절로 바빠진다. 수많은 차들이 달리는 모습에서 마음이 바빠진다. 어디를 빨리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걸어가다 녹색 신호등이 깜박거리기만 하면 달린다. 그래야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성당에서 잠시라도 머물고 가더라도 정지되어 우리를 반겨주고 있는 것 같은 산과 들을 보면서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산책로 주변에 피어있는 할미꽃, 아기똥풀, 제비꽃 등 야생화를 보면서 그것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눈을 얼마나 즐겁게 해주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솔잎이 소복하게 떨어져 있어서 걸을 때도 양탄자 위를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오솔길을 생각해 보라. 또 강가에는 돌멩이들이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이런 작은 풀과 돌멩이를 소홀히 하고 귀찮아 한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 도시는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온통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구두에 흙을 묻히기 싫어하고, 풀 뽑기가 귀찮다고 시멘트로 뒤덮어 버린 도시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여름이면 복사열 때문에 거대한 찜질방 같은 도시에서 올 여름에 사람들은 또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어진 대화성당에서 일어난 기적을 느꼈으면 좋겠다. 성전건축도 불가능했던 이 성당이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계획보다 동냥이 잘되어서 처음 설계와는 다르게 이것저것 변경하게 되었고, 그 건물을 보고 이름 있는 작가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성당 중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성당으로 바꾸어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이다. 인간이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계획은 엉뚱하다. 이 성당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이런 하느님의 역사를 느끼고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삶임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의가 끝나고 금당계곡(錦堂溪谷)으로 안내를 했다. 버스 안에서 강원도 사투리도 가르쳐 드리고,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메밀막국수, 한우고기, 곤드레밥, 송어회 등을 소개한다. 나는 잠시 사제의 직분을 떠나 관광가이드가 된 기분이다. 철쭉꽃이 활짝핀 금당계곡에 들어서자 마자 소낙비가 온다. 5월 중순에 우박까지 섞인 비가 오는 것은 깊은 계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가는 비 같아서 잠시 기다리니 소원대로 이루어져서 계곡에서 준비해 간 음식도 먹고, 물놀이를 즐긴다. 그리고 즉석 라이브 콘서트를 열어서 음대 성악가 출신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무릉도원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왔다.
하루종일 가이드 노릇 하느라고 피곤했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이 시골성당까지 찾아주신 분들이 너무 고마워서이다. 그리고 저녁미사를 드리려고 신자들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홀로 성무일도 저녁기도를 바치고 사제관으로 들어왔다. 성당을 짓기 전에는 1인 5역이면 되었다. 신부, 수녀, 식복사, 사무장 그리고 봉고차 운전사였다. 그런데 요새는 두 가지 역이 더 늘은 것이다. 가이드와 민박집 주인의 역할이다. 저녁이면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불이 켜진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문을 잠그면서 나의 삶을 잠시 반성해 본다. 오늘이 성소주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꿈꾸던 사제의 모습인가? 시골성당으로 부임해서 지금까지 외로움을 잠시도 느낄 여유도 없이 분주하게 살아왔다. 사제로서의 현재의 내 모습은 이 성당에서 형성된 것이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사제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주어진 여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Sitz im Leben)는 시골성당이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가다 도시성당의 상황과 비교를 하면서 나의 삶을 평가한다. 그러면 참 비참해 진다. 주일미사 때도 오르간 반주 없이 그냥 미사를 드리면서 더욱 그렇게 느끼고, 평일미사에 할아버지 할머니 신자들만이 오셨기 때문에 미사해설도 없이 독서, 화답송, 알렐루야, 복음을 읽을 때도 그렇다. 많은 시골신부들이 아마도 나와 같은 무력감에 시달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전 청주교구의 청천성당 신부가 방문했을 때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어쩜 그렇게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서로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런데 성당만이 이런 것이 아니라 시골에 있는 사찰의 스님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가까운 대덕사의 친구 스님과 이야기하다 보면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안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착한 목자가 되기 위해서 시작한 사제의 길! 그런데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감사한 것은 힘든 일에 비해서 주님으로부터 받는 은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성전이 지어진 것은 물론이고, 보잘 것 없는 시골성당을 방문해 주시는 많은 신자들로부터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신자들에게 신부노릇보다 자식노릇하는 나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용돈을 주시기도 하고, 밑반찬을 떨어지지 않게 가져다주신다. 오늘 미사 중에는 속내의 쉰 벌을 준비해서 드렸더니 할머니들이 요구르트 4줄과 음료수 한 병을 사다 주셨다. 성당 문을 닫으러 밤중에 나가야 하는 시골신부의 삶이지만 행복하다. 성소주일을 보내면서 천국의 열쇠의 프란치스 치셤 신부님이 생각난다. 군대에서 그 소설을 읽으면서 치셤 신부님처럼 휴머니스트로 살겠다고 결심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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