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엇을 보고 있는가?(부활 4주 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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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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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0-05-16 | 조회수2,607 | 추천수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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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5, 16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요한 10,22-30 (유다인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
때는 겨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주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묵상>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불심검문을 남발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다 보면 갑자기 (전투)경찰이 다가와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자고 합니다. 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나를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보다 '나의 신분증'이 나를 더 잘 증명하는 기막힌 현실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비단 불심검문만이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상대방을 직접 보고 살을 맞대면서도 그 사람에게 자신을 알려줄 무엇인가를 요구하곤 합니다. '한 사람 자신'을 보면서도 '한 사람이 지닌 무엇'을 통해 한 사람을 보고자 합니다. 눈이 멀었기 때문에, 아니 마음의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쉬운 방법을 놔두고 어려운 방법을 애써 찾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무엇을 보여주더라도 믿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이 깨달음이 있어야만,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의 그릇된 모습을 인정해야만, 잘못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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