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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과 나는 어떤 관계?(부활 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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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21 조회수2,914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0, 5, 21 부활 제5주일 복음 묵상

 

 

요한 15,1-8 (나는 참 포도나무)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떠난 사람은 잘려 나간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 가지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묵상>

 

모 일간지 특집면의 처음에 어디서 인용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우리 아빠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섯 살 때

우리 아빠는 많은 것을 알고 계셨고 내가 묻는 것은 자상하게 답해 주셨다.

여섯 살 때

우리 아빠는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열 살 때

우리 아빠는 '내가 어릴 때와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왜였을까?

열두 살 때

'아빠가 너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잖니?' 그래, 아버진 당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삶에 지치셨던 것 같다.

열내 살 때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면서 아빠의 권위만 찾아. 집에 들어오면 잠만 자고, 늘 지쳐 있는 패배자 같아.

열여덟 살 때

아빤 괜히 내 방 주위만 맴돌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귀찮아.

 

신문은 부분만 인용한 이 우스갯소리가 다행히 해피앤딩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끝나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예순이 되어 '난 아버지만큼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끝을 맺는다."

 

우리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느끼는 부모님은 달라집니다. 부모님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태도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마음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픈 열망으로 가득합니다. 질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할 때가 된 것이지요. 하느님의 대리자로 우리에게 생명과 삶을 유지하는 데 모든 것을 주신 부모님과의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것이며, 끊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불행한 가족 관계가 늘어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부모님과의 새로운 질적 관계를 맺는데 성공하면, 그 가족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대를 이어 더욱 풍요로운 가정의 열매를 맺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가정은 삐그덕거리기 시작하며, 심한 경우 가정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성당에 나와서 세례를 받고 열심한 마음으로 생활할 때는 예수님이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과 자신이 끈끈하게 맺어져 있다는 생각에 세상에 남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의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신앙 생활이 몸에 배고, 나름대로 교회 생활에 익숙해지면 예수님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자신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유아기적 신앙인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해가는 이러한 과정에서 이제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를 질적으로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교회로부터 얻어 먹기만 했던 기존의 관계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자신도 예수님과 교회에 무엇인가 드리는 관계로 전환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과 교회에 드릴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제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세상이라고 말하는 오늘날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기 길'을 따라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예수님과 계속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앙 생활을 통해 자기 이익이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은 결코 희생과 봉사를 통한 사랑과 희망과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당신을 떠나려는 사람들, 당신을 떠나있는 사람들, 형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당신을 떠나있는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한 단죄의 말씀이 아니라, 당신 곁에 두고 모든 것을 내어주시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과 현실에서 취할 수 있는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하는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나는 하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 라는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생각에서 벗어나 '과연 예수님과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평생을 가지고 가야할 이 물음에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가지고 대답해 가는 과정이 신앙의 여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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