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도와 성령의 관계(성령강림대축일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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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인찬 | 작성일2000-06-10 | 조회수3,275 | 추천수21 | 반대(0) 신고 |
기도와 성령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약속하신 대로 당신이 하느님 곁으로 떠나시고 난 다음 약속하신 대로 당신의 협조자이신 성령을 우리 에게 보내주심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이다. 성령강림은 하느님께서 삼위일체라는 심오한 진리를 입증하는 사건일 뿐 아니라, 우리 인류를 홀로 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의 표현이다. 흔히 구세사,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歷史)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구약을 성부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시대라고 한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직접 예언자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당신의 사랑과 구원계획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인 신약이다. 외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함께 사셨던 시기다. 33여 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기이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의 하느님’을 명백히 보여주셨던 사랑과 은혜가 충만했던 때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다가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심으로써 구원의 때가 종말을 고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협조자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한다. 또 성령은 항상 교회를 통해서 은총과 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교회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역할이 끝나고 성령만이 활동하는 시대라고 뜻이 아니다. 삼위의 하느님은 늘 내적인 친교 속에서 구원사업을 계속해 나가시기 때문이다. 강림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도 없는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곁에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셨다. 성서를 통해 보면 성부이신 하느님과 성자이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던 데 비해서 성령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 사랑 그리고 구원의 선물을 베풀어주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당신이 떠나가가야 협조자 성령이 오시는 것(요한 16,7)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 성령의 선물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이 베풀어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힘없이 돌아가시자 살아 생전에 한 자리나 차지하겠다는 욕심으로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고 몇몇 제자들과 여인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몰래 숨어서 기도하고 있었다(사도 2,1).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잡히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정말 간절히 기도를 바쳤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령이 불혀 모양으로 오셨다고 사도행전은 전해준다. 성령강림을 체험한 그들은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이상한 말을 하는 능력을 받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알아듣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창세기의 바벨탑에서 사람이 하느님을 제치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함 때문에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된 징벌이 풀어지는 하느님의 용서가 베풀어졌다.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들은 늘 기도해야 한다(1데살 5,17). 마라톤 경주와 같이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리옷 유다는 스승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되자 은전 30냥에 팔아먹었고, 살아생전에 따라다니던 수많은 사람들도 십자가에서 처형되신 주님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제자들만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기도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선물을 가득히 받았던 것이다.
나는 성전건축을 하면서 한 때 사제직을 포기할 정도로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와 같은 절망 속에서 나는 기도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성전건축과 관련해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올 때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 할 길 없어 성체 앞에서 밤을 새워 울며 기도했다. 하느님만은 내편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어둔 터널을 헤치고 나오는 길은 정말 외로웠다. 하지만 언젠가 진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 후 일 년이 지난 요즘 어려웠던 그 때를 회상하면 정말 ’행복한 십자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서쪽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가 내가 걸어온 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시골성당에 많은 순례객이 줄줄이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순례객들과 미사를 드리며, 함께 녹차를 끓여 마시면서 언제 그랬느냐 할 정도로 행복하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넘쳐 흐른다(로마 5,20)는 말씀처럼 고통이 컸던 만큼 행복도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힘들기도 했던 시기였지만 선물로 받은 은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 묻혀버렸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로마 8,28)라는 말씀을 내 삶에서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와 기쁨의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 절망했던 어두운 밤을 통해서 믿음의 단련을 받았다. 만일 그들이 바랬던 대로 스승이 지상의 왕국을 세웠으면 그들은 벼슬 직위를 얻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고 절망 상태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 늘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오늘날까지 믿음의 모범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성령의 선물은 누구나에게 열려있는 하느님의 축복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기도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은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성인은 ’성사없이는 구원받을 수 있어도 기도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까지 하면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해서 오늘부터라도 기도하는 삶을 시작해보길 간절히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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