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삼위일체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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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인찬 | 작성일2000-06-17 | 조회수2,207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삼위일체대축일 강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강화도의 시골마을이다. 지금은 부모님과 형님 내외가 농사를 지으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나는 고향 생각만 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 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열 다섯이나 되는 대식구가 농사를 지으면서 수백 년 동안 살아온 터전이었던 고향집이 그립기 때문이다. 또 늘 신랑 각시 놀이했던 짝순이가 보고 싶고 동네 친구들과 해지는 것도 모른 채 산과 들에서 놀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아버지 칠순 잔치 때 고향집을 가보고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고향이 있기에 어느덧 타향살이를 26년이 되어가고 있어도 전혀 쓸쓸하지 않다. 갈 수 있지만 안가는 고향과 갈 수 없어서 못 가는 고향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을 앞두고 가장 먼저 실향민들 문제가 거론된 것은 인도주의가 가장 우선시 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념과 체제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상이 드러난 것이다. 해방이 되고 급격한 사상적인 격변 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수많은 실향민들이 이번 역사적인 사건에 기대를 가장 크게 갖고 있다는 소식이 듣는다. 이산가족의 가슴에 맺힌 한(恨)을 풀어 주겠다는 두 정상의 약속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남북화해의 물꼬가 트여가는 것을 보면서 잊고 살았던 고향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면서 그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농사짓는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나는 장손이자 맏상주로 떠받들어지던 형님과 달리 나는 일꾼의 역할을 해야했다. 형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 대학을 다니던 고모님을 따라서 서울로 유학을 갔지만 나는 ’공부하라’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늘 부모님 일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휴일은 물론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농사일을 거들거나 소를 끌고 뒷산으로 올라가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보아도 뒤는 작은 봉우리가 받쳐주고 앞에는 논과 밭이 시원하게 펼쳐진 우리 집은 명당 터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 뒷산에 오르면 지금도 그렇지만 북한 땅이 훤하게 보인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강화도는 그 폭이 3km도 채 안되는 바다를 휴전선으로 하여 남과 북이 갈라져 있다. 가까운 곳은 1.5km 밖에 안되기 때문에 고요한 밤에는 개짓는 소리를 서로 들을 수 있다. 그러니 155마일(228km) 휴전선 중에서 강화도만큼 북한 땅과 가까이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를 끌고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가서 나뭇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거나 물싸움(잔디씨가 달리는 대롱을 갖고 하는 놀이)을 하면서 북녁땅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휴전선 바다 한 가운데는 ’뱀섬’으로 불리는 우도가 있다. 몇해 전에 북한에서 홍수로 떠내려온 소가 잠시 머물렀던 바로 그 섬이다. 육안으로 보아도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6,25 전쟁 후 인적이 완전히 끊어졌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섬은 이름 모를 온갖 종류의 철새들의 요새이다. 특히 봄철에 울창한 소나무 숲에 앉아 있는 백로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을 연출한다. 파란 나무 위에 하얀 눈이 내린 것과 같이 보이는 수만 마리 새들은 북에서 남으로 또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귀달린 뱀, 날아다니는 뱀과 같이 수많은 뱀들이 살고 있으니 먹이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철새들이 사시사철 그 섬을 본거지로 하여 북쪽 남쪽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이런은 생각에 젖곤 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데 엎어지면 닿을 거리를 수십 년 동안 가지 못한다. 남쪽은 민주주의 북쪽은 공산주의 사회로 나뉘어서 서로 오고가지 못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저 건너편 연백평야가 그렇게 기름지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실 정도로 사기 좋은 땅이라고 하셨는데...그런데 저 하찮은 미물인 새들이 사람 보다 낫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생겨난 이념 때문에 한민족(韓民族)은 반백 년 이상 갈라져 살았다. 외국에 나가보면 기억도 못하는 동양의 작은 국가가 바로 우리 나라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오죽 못났으면 지금까지 같은 민족끼리 서로 으르렁대며 살고 있느냐는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이 너무 기쁘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우리 민족이 이제야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들과 같은 자유를 찾는 물꼬가 터졌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삼위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이성의 한계로 알아듣기 어렵다. 예비자 교리 때 가장 곤란한 교리 중의 하나가 삼위일체 신비이다. 나는 믿을 교리이니 그냥 믿으면 좋다고 얼버무린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삼위일체 신비야말로 평화와 사랑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 동안 명한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마태 28,19)고 우리들에게 명령하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인종 이념 국가를 초월해서 지구상에서 어느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 결국 예수님은 하느님 구원의 넓이와 깊이를 세세 대대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계시다. 당신이 살아계시면서 행동과 말씀으로 보여주셨던 가르침은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갈라졌던 휴전선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이념과 상처 때문에 반목과 질시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다. "성부여 이 이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요"(요한 17,21).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평화와 사랑이다. 그러니 이 하느님을 믿으면서 하느님을 떠나서 살 수 없으며, 어떤 이유라 하더라도 사람들끼리 갈라져서 살아서는 안된다. 이처럼 삼위일체 신비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알아듣기 힘든가 보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과거 역사를 통해서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기여하지 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7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 1618-1648년 사이에 있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30년 종교전쟁이 증명해 준다. 또 최근에 있었던 보스니아 세르비아 내전도 종교 역사의 어두운 단면이다. 6월 16일 국민일보(개신교계 일간지)에서 남북이 통일도리 때를 대비해서 그리스도교가 대북선교 개선방향을 제시해서 눈길을 끌었다. 남북종교 교류에서 ’깃발꽂기식 과열은 오히려 역효과이니 교계협의체를 구성해서 쌍방향 믿음 심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통일을 향한 길목에서 우리 그리스도교의 대북선교열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져서 갈등과 불목을 일삼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념과 정치적 욕심을 뛰어넘어서 대통합을 이루어냈는데 그리스도교의 분열의 모습이 북한 땅에 그대로 전해진다면 종교 때문에 남한에서 그동안 흔히 보아왔던 것처럼 민족대단결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종교를 모르고 살았던 분단 시절이 더 인간적이고 평화로웠다고 북한 사람들이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지켜보면서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했다. 다른 종교는 차치하더라도 그리스도교만이라도 하나도 통일될 수 없을까? 각 종파가 이제 교조주의에서 해방되어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의 그리스도교로 거듭날 수 없을까? 다행히 지난 사순절에 교황님의 고백성사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화해가 가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구체적인 내용부터 서로 양보를 해야 한다. 남북도 평화통일의 대원칙을 제시하고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겠다고 발표하였다. 물론 나도 누구보다도 신학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한 사제로서 개신교와 교리 논쟁이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2,000년 대희년이라고 요란한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같은 그리스도교인들이 통일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55년 동안 원수로 지내던 남북의 두 정상도 만났는데, 평화와 사랑의 원천이신 삼위일체를 믿는 그리스도교인들은 왜 하나가 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에 우리 모두 기도하자. 남북이 통일되는 그날까지 우리 그리스도교도 하나로 통일되게 해 달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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