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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과 믿음(성녀 마르타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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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7-29 조회수2,699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0, 7, 29  성녀 마르타 기념일 복음 묵상

 

요한 1서 4,7-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미이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게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 11,19-27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그 때에 많은 유다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타는 마중을 나갔다. 그 동안 마리아는 집 안에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게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르타는 "마지막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묵상>

 

누군가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여 하나가 되고자 할 때, '사랑한다' '믿는다'라는 말을 씁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바로 '사랑'과 '믿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사랑과 믿음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대상, 믿음의 대상은 크게 '하느님'과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나 믿음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믿음을 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의 고백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타가 고백하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곧 오빠인 라자로에 대한 사랑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르타는 오빠의 죽음으로 깊이 상심했습니다.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 앞에서 마르타는 오직 예수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 죽은 오빠를 살려내라고 억지를 부리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오빠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고백이고, 바로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사랑하는 오빠와 다시 만나고픈 간절한 염원의 표현입니다.

 

마르타에게 있어서 오빠의 죽음은 단지 절망적인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굳은 믿음을 고백하게 하는 신앙 고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빠에 대한 마르타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마르타의 굳은 믿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르타의 사랑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결실을 맺게 하셨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마르타와 라자로의 관계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소생시킴으로써 이 관계를 다시금 살아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오빠 라자로에 대한 마르타의 사랑이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마르타의 사랑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아름다운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상대방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좋은 관계로 바꿔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인내를 가지고 예수님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려봅시다. 부모님일수도 있고, 자녀들일수도 있습니다. 친한 친구나 교회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믿음의 벗일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를 뒤로 하고 과연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이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가장 밑바닥부터 다시 짚어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여전히 갈등을 느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기에 마음 한 구석에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남아 있습니까? 그러면 됐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우리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우리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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