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예언자, 거짓 예언자!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산,하느님 그리고 나! | |||
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0-08-29 | 조회수2,01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예언자, 사도, 제자로서의 삶이 우리가 살아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언자라고 다 예언자가 아니고 제자라고 다 사도로 뽑힌 것도 아니고, 사도라고 다 참 사도는 아니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두 예언자 아모스와 아마지아는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대표한다. 아마지아는 직업 예언자로 명망있고 떵떵거리던 예언자였다. 하지만 더이상 하느님을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그 뜻을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지 않고 기득권과 기술로써만 거짓 가르침을 유포하였다.
반면 아모스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농부요 목동이었다. 참 오늘이 농민주일이다. 아모스를 생각하며 농민들도 함께 기억하자. 어느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잘 나가는 신자들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열심하고 거룩해 보이고 능력도 있어보이는 분이지만 하느님의 능력과 뜻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뜻에 사로잡혀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 재속 프란치스칸들은 성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성소의 삶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다. 내가 원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셨기에 이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우리의 서약식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이 삶을 살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예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록 아모스처럼 보잘 것없는 우리이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선포하시려는 말씀과 그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말과 행동으로 회개를 선포하는 일이다. 이것이 서약자로서의 우리의 사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재속 프란치스칸 성소의 특성, 즉 우리의 카리스마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10년간 재속3회원들을 지도해 왔지만 이 재속 프란치스칸 성소의 본질을 올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드물었다.
이는 회헌 제3조에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재속성이다. 재속 프란치스칸들은 수도자들처럼 세속을 떠난 삶이 아니라 세속 안에서 세상을 위한 삶으로 불리움을 받았다. 그 재속성의 중심에는 가정이 있고, 내 지역사회와 본당, 직장이 프란치스칸 성소를 살아야 할 장소가 된다. 3회 월례회만 나오고 가정과 직장, 지역사회와 본당에서의 증거의 삶이 없다는 우리의 성소를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프란치스코성이다. 아무리 열심하다고 해도 프란치스코적이지 않다면 그는 재속 프란치스칸이라고 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영성에 대해 모르면서 프란치슼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는 형제성이다. 형제회라 불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재속, 프란치스코, 형제회 바로 이 이름 안에 그 영성이 녹아 있다.
우리의 서약의 삶은 바로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이 세가지 특성에 비추어서 늘 반성되어야 한다. 즉 나는 얼마나 재속 삶에 적극적이며, 나는 또 얼마나 프란치스칸적이며, 또 나는 얼마나 형제적인 사람인가? 우리 형제회는 얼마나 재속 삶에 투신하고 있으며, 프란치스칸적 정신에 물들어 있고, 회원들간에 형제적 친교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가?
이 세가지 우리 카리스마를 올바르게 살 때 우리는 아모스와 같은 참 예언자요 참사도요 참 제자의 삶을 사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아마지아처럼 거짓 예언자요 거짓 사도요 거짓 제자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인천 XX형제회 서약미사를 위한 강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