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 파견하는 제자를 가르치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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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민철 | 작성일2000-10-05 | 조회수2,13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뽑으셔서 여러 고장으로 파견하시면서 이르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 왔다고 전하는 것, 즉 선교가 바로 파견의 목적이셨습니다.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머치 어린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서는 마치 자식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어머니의 그것과도 같은 인간적인 걱정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저의 느낌입니다만,)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평소때와 비교해서 특별히 많은 말씀들을 제자들에게 들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훈련교관의 유창한 브리핑처럼, 예수님께서는 선교지에서 제자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 할 말들까지 세세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 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여라. 그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인사해야 할 지, 그리고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들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분명 있었을 터인데, 예수님께서는 위와 같이 명료한 답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호의를 베풀며 사람들에게 인사하라’는 것, ’일꾼의 당연한 품삯을 받는 것이니, 거저 숙식을 제공받음에 대하여 게의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드러나는 의미입니다.
과연 거기에 어떤 함의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생각하기조차 몹시 힘이 들지만, 이러한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육성으로 직접 들은 제자들은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속편한 말’처럼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치안이 확립되어 있지 못했고, 교통망도 발달되어 있지 않았을 뿐더러,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위험하고도 불온한(?)’ 사상을 전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것은 정말 ’속편한 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그 말씀을 하셨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예수님이셨기에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었고, 그 말씀이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제자들은 즉시 그 말씀대로 행하였을 것입니다. ’큰형님’ (이러한 표현이 용서된다면)의 ’어명’에 두렴없이 당당한 마음으로 따르는 ’아우들’처럼,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넘쳤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을 곁에서 스승으로 모셨고, 그분의 사랑안에서 그분외에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었던 그들과, 그 믿음을 저는 부러워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은총을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저의 무지와 비굴로써 그것을 거부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간구하는 바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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