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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타, 마르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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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민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0-10-10 조회수2,039 추천수5 반대(0) 신고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그의 유일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데, 태생적으로 허약했던 그는 천식으로 요절하였다 합니다. 문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그가 이 소설에서 사용한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은 20세기초 문예의 한 사조를 탄생시켰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합니다.

 

 갑자기 프루스트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물론 오늘 복음내용과 관련되어서 인데, 복음에서 ’넋을 잃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작가 프루스트의 유명한 습관 하나를 저에게 상기시켰기 때문입니다.

 

 프루스트는 동료들과 산책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어느 풍경, 사물과 맞닥뜨리면 그 자리에 서서 바로 명상에 잠기곤 했다는데, 동료들은 이런 그의 습관을 존중해 주어 명상중인 그에게 말을 걸거나 하지 않고 숙연해 주었다 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읽어 보면, 뇌수술에 임하는 집도의의 그것과도 같은 섬세함에 기가 질릴 정도인데, 그는 분명 이 초인적인 예지로써,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또는 그것들의 혼합 사이에 범인들은 놓치고 마는 어떤 ’위대성’, 모르긴 몰라도 ’불명함’같은 것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그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을 살았고, 퇴폐작가로 비난받기도 하였지만 말입니다.)

 

 예술과 세속에서 ’불멸’을 ’관상’하던 프루스트는 분명 불행하였을 것입니다. 그 자신이 ’필멸’이었고, 역시 ’필멸’(사물, 사람, 풍광 등)에의 관상에 기반한 그의 예술 역시 ’필멸’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히 인간이상의 예지를 지니고 있었던 그는 과연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요. 제게는, ’교만’이라는 악마가 그로 하여금 애써 이 사실을 부정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위대한 필멸’인 예술이 탄생되었으리라 여겨 집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복음의 마리아는 지상에서 유일했던 ’행복한 예술가’가 아니었을까요. 왜냐하면 진정한 예술가란 ’불멸’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마리아는 그 ’불멸하심’ 자체를 바로 눈앞에서 바라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시중을 드느라 경황이 없었던 마르타에게는 그러한 마리아의 모습이 비생산적이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무의미한 것으로 보여졌지만 그것은 사실, 가장 수동적이나 적극적인 한 행위였고, ’진리’이시자 ’사랑’이산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관상’이었으며, 궁극적인 예술활동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예수님께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느라 열심이었던 마르타는 동생 마리아에게 과연 인간적인 언짢음을 느낄 만도 해, 예수님께 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둘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마르타가 한 일은 분명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것 없이는 사실상 인간다운 생활이 불가능할뿐더러, 생물학적인 생존조차도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역시 잘 알고 계시던 예수님께서는, 두번씩이나 마르타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그녀를 타이르시는데, 그 모습이 제게는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혹시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조심하시는 예수님의 여인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그랬더라면, 그들이 예수님에게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내쫓았을 때처럼, 화를 내시며 나무랐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진정 그녀에게 필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이떤 일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인간의 노력은 물론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마르타의 경우처럼, 우리는 ’인간능력의 한계’라는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그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필요한 한가지란, 자신을 오롯이 당신께 의탁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며, 오직 당신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으로만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

 

 그 좋은 몫, 마리아의 몫은, 비단 수도자나 관상가들만의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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