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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마누엘:하느님,우리,함께(대림 3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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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12-18 조회수2,32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0, 12, 18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마태 1,18-2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묵상>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편에서 보자면 말이지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편에서 보자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니 너희도 나와 함께 있어라." 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짧은 단어 안에는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우리(너희)', '함께'가 그것입니다. 만약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져 버린다면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오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당신 혼자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오시는 하느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임마누엘'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너희)'가 거부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없고 '임마누엘'은 의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사소한 인간 관계 안에서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것이 일상적이 되어버린 요즘,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을, 교회라는 정겨운 울타리안에 함께 생활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자신의 이익에 따라 내팽개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는 어떻게 대할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하느님(하느님의 뜻)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예언자에게 내려진 '임마누엘'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간절한 하소연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지 않니? 그러니 제발 나를 떠나지 마려무나. 너희와 함께 하고픈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제발 외면하지 마려무나.'라는 하소연으로 말입니다.

 

하느님께 너무나도 죄송스럽습니다. 내 자신이 때때로 '함께 하시는 하느님'(임마누엘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났기에 죄송스럽습니다. 믿는 이들이 하느님과 함께 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야 할 주님의 사제로서, 때때로 혹시나 내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비난의 화살이 두려워,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형제 자매들을 방관했기에 죄송스럽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 돌아가고 싶습니다. 내가 먼저 나의 알량한 인간적인 자존심이나 사제로서의 권위 의식을 내어 던지고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께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따르는 믿음의 벗들에게 분명하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하겠지만 말이지요. '당장에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사제'보다는 '주님의 사제,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주님의 뜻을 끝까지 외쳤던 사제'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하고 싶습니다.

 

거대한 현실을 벽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인 '임마누엘'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주님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요셉의 용기있는 믿음의 행동이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나를 통해 다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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