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쉬고 싶은 사람은..(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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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우진 | 작성일2001-02-03 | 조회수1,727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어제 신문을 보니 자살 관련 싸이트에서 만난 젊은이 세명이 자살을 하려다가 한 명은 시도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고 나머지 두 명의 청년이 자살을 결행했단다. 이제 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그 친구들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다. 참 맘이 많이 아펐다.
오죽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자살을 선택했을까? 하는 이해의 맘도 생기지만 그런 용기라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크다. 물론 그들도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살이라는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들도 쉬고 싶었으리라 삶 안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고통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으리라. 자살 관련 싸이트에 접속해오는 수 많은 사람들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이란다. 거기서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자살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 자살하라고 말이다. 참 한심하다.
자신이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는 시간,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시간 이런 시간들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창조적으로,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간의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고 그 고통이 있기에 성장과 성숙이 이룩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사랑받기 위함에 있다는 것 그러기에 누군가는 사랑해주어야 하고 또한 사랑 받으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삶에서 닥쳐오는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고 도망만 칠 때 내가 선택한 ’쉼’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성이 결여된 파괴적인 ’쉼’이 되지 않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복음 전도를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좀 쉬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람들을 피해서 한적한 것으로 가신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 곳까지 집요하게 따라왔던 것이고 예수님은 그들을 ’측은한 맘’으로 바라보시고 가까이 오게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가르침을 주신다.
진정한 ’쉼’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의 일상을 탈출하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쉼’이후에 이어지는 삶 안에서의 투신이 포함될 때가 아닐까? 좀 물러나 쉬고, 생각하는 여유도 있어야 겠지만 그 ’쉼’을 통해 나의 삶이 건강해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있어야 겠다. 그때 그 ’쉼’이 진정한 ’쉼’이 되지 않겠는가? 아마 그때 우리는 그 시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쉽시다...*^^*
행복하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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