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됨의 신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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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5-08 | 조회수1,811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 신원을 명확히하라는 유대인들의 집요한 추궁 앞에 예수께서는 당당히 <나는 아버지와 하나이다> 라고 응답하신다.
하나라는 것, 이렇게 고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우리 크리스천에게 있어 이 <하나>란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삼위이시며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으며 <한분이신 독생성자>와 <한분이시며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이며> 보편적이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임을 확언한다. 우리는 하나를 표방한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성체 안에서의 일치, 하나의 몸(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들이다.
우리 또한 예수처럼 <나는 아버지와 하나이다> <나는 교회와 하나이다> <나는 형제들과 하나이다> <나는 남편과 하나이다> <나는 아내와 하나이다> <나는 자연과 하나이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때 올바른 의미에서 완전한 인격적 통합을 이룬 사람이 된다. 자기 신원을 완전히 성취한 사람이 된다.
우리의 영적인 여정은 바로 이러한 하나됨의 신비에로 나아가는 여정일지 모른다.
이 하나가 되는 조합들을 생각해 보자.
- 물방울들이 서로의 흡인력으로 뭉쳐지는 예 - 온갖 물이 결국 바다 안에서 통합되는 과정 - 톱니바퀴가 따로 돌아가지만 엇물려서 하나의 기계장치가 되는 과정 - 원과 원이 하나로 점점 더 결합되어 가는 모습
수많은 조합들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 흡인력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든지, 아니면 강력한 힘이 상대를 완전하게 끌어들이든지 어쨌든 흡인력이 필요하다. - 꼭 같은 형상이나 재료일 필요는 없다. 다양하면서도 하나를 이룰 수 있다. - 비움의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와 아버지가 하나임은 그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이 늘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찾는데 그 비결이 있는 것같다. 그분과 우리가 하나되는 과정도 마치 목자와 양이 하나가 되는 것과 같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 서로를 잘 알고 서로를 내어놓고 비울 때 우리는 하나됨의 신비에 이를 수 있다.
나는 누구와 하나인가? 나는 누구와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 그 하나됨에 있어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를 비우자. 그리고 서로 다가가자.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서로를 알고 이해하자. 받아들이자. 그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나와 XX는 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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