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때론 함께, 때론 따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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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 작성일2001-05-10 | 조회수2,077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예수님 부활 이후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그리고 이방인 지역을 중심으로는 바르나바와 사울이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열심히 사도적 활동을 벌이게 된다.
베드로와 요한이야 예수님의 수제자들이고 부활의 직접적인 목격 증인이어서 어쩜 당연히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바르나바와 사울이 이방인 선교의 핵심으로 나서서 교회 창설에 크게 기여하게 됨은 하느님의 섭리라 아니할 수 없다.
어쨌거나 교회 창설의 근저에 나타나는 이 사도들의 활동을 바라보면 둘씩 둘씩 짝지어 제자들을 파견했던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 때문인지 두사람이 함께 일하는 모습으로 나타남이 참으로 보기 좋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 바르나바와 사울은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하고 우직스런 베드로의 성향과 기질, 섬세하고 신비적 성향을 지닌 요한의 성향과 기질은 완전히 다르다. 바르나바는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어진 사람>이고 사울은 <날카로운 지성과 비판의 소유자>이다. 유대지역에서의 베드로와 요한, 이방인 지역에서의 바르나바와 사울은 우리 교회의 다양성과 일치를 드러내 주는 표상이 아닐까?
요즘음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이제 사울과 바르나바를 통한 이방인 선교에 중심을 두고 있다. 사울은 바르나바를 통해 회개하게 된다. 바르나바는 이방인 지역의 사도요 어른이었고 사울은 회개하여 바르나바의 협조자가 된다. 둘이서 함께 일하면서 많은 신자들을 얻게 되고 수많은 교회들을 창설하게 된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아마도 성서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한번 두 사람은 대판 싸웠던 것같다. 의견충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함께 가지 않고 따로 다른 지역으로 선교를 나가게 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를 하느님의 섭리로 바라보면서 <하느님께서 이들을 따로 세우셨다>고 하나 실제로는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고 문제가 생겼을 소지가 다분히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이 갈라진 것이 나쁜 결과만 초래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따로 선교여행을 함으로써 하나가 생길 교회가 둘씩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본당생활, 수도원 생활 안에서도 무엇보다도 우리는 함께 일하도록 불리움 받았다. 그러나 때론 따로 일해야 할 때도 있는 것같다. 함께 마음을 못맞추고 화가나서 따로 갈라서야 할 때도 있단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함께 일함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따로 일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요 섭리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때로 함께 해야할 아내나 남편이, 또 함께 해야할 직장에서의 팀 동료가, 또 본당에서의 형제 자매가, 수도원에서의 형제 자매가 나와 의견이 달라서 기분 나쁘게 함께 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지만 열려 있자. 그 때문에 너무 가슴아파 하지말자.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지만 똑같은 방향으로 똑같은 일을 똑같이 하기를 원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일하였다 하더라도 그 역할이 달랐다. 베드로는 주로 설교를 하고 요한은 주로 베드로를 뒤에서 도왔고 기도로써 동반하였다. 사울이 주로 설교하였고 바르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써 영적인 모델 역할을 하였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같이 일하는 것이 꼭 중요한 것이 아니라 때론 함께, 때론 따로 일하되 서로의 역할을 깊이 있게 인정해 주고 격려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하느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정 공동체, 직장 공동체, 본당 공동체, 수도 공동체의 사도직 활동의 방향은 이 함께와 따로의 의미를 그 구성원들이 깊이 내면화할 때 그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사도들을 통해 함께 어떻게 교회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시는 하느님께서는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나의 가정에서는 어떤가? 나의 직장에서는 어떤가? 나의 본당에서는 어떤가? 나의 공동체에서는 어떠한가?
아름다운 가정생활 아름다운 직장생활 아름다운 본당생활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오늘 하루 주제로 삼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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