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 가지 방향의 시선(부활 7주 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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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06-02 | 조회수2,847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2001, 6, 2 부활 제7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요한 21,20-25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 복음서를 엮은 이의 끝말)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르고 있었다. 그는 회식 때 그분의 가슴에 기대어 "주님, 당신을 넘겨 줄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제자)였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를 보고는 예수께 말했다. "주님,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그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원한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나를 따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이 말씀이 형제들 사이에 퍼져나가 그 제자는 죽지 않으리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원한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사람)은 이것들에 관해서 증언하고 또한 이것들을 기록한 제자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것들도 많이 있다. 만일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된 책들을 (다) 담지는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묵상>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시선은 두 가지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하나는 목적지를 향하고, 다른 하나는 한 목적지를 향해 함께 가는 사람들을 향합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지를 놓고 경쟁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서로 협력하면서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든 상관 없습니다. 물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을 향한 시선에 담긴 의미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갈 때, 자연스럽게 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과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이 함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이 근본적이고 더욱 중요한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함께 걷는 벗들을 향한 시선이 별 가치가 없다거나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굳건하게 주님의 길을 걷는 믿음의 벗들을 봄으로써 선의의 자극을 받고, 자신 역시 세상의 어떠한 권세와 유혹에 굴하지 않고 주님의 길을 걸어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음이 흔들리고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로서 하느님 나라가 모호하게 다가올 때, 세상의 온갖 화려한 권세 앞에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의미하게 다가오거나 주님의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나와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주님의 길에 충실한 벗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시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열심히 자신에게 맡겨진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벗들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이것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뀌어 벗들을 향한 시기와 질투의 시선으로 변질하게 되면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은 오히려 주님을 향한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벗들을 향한 시선은 주님을 향한 시선을 가로막지 않고, 때때로 뿌엿게 보이는 주님(과 주님의 나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이끄는 한에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벗들을 보기 전에 자신을 부르신 주님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고유한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길을 걷는 옆에 있는 벗들의 사명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내게 맡겨주신 고유한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믿음의 벗들, 그러나 이들은 말그대로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벗들일 뿐 결코 주님을 대신할 수도 없고, 대신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벗들과 함께 걷도록 하신 까닭은 당신을 대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께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힘과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원한들,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나를 따르시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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