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남편이 아니라 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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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1-08-05 | 조회수1,978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결혼 전에는 몰랐었는데, 살아가면서 점차 두드러진 성격차이를 알게되면서 평생 서로 갈등을 겪으며 살았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인의 입장에서 볼때 30여년 동안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한마디로 지옥과 다름없었고, 이제 남편에 대해 남은 감정이라고는 오로지 증오감뿐이었습니다. 남편은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망친 "웬수"였습니다. 이런 감정은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것은 순전히 자식들 때문이었다고 두분 다 제게 말했습니다. 사흘이 멀다하고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에 집안에 사기로 만든 그릇이라고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때도 두분 사이에 더 이상 어떤 변화나 희망은 기대할 수가 없는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도저히 변화될 것 같지 않던 두분 사이에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화는 어느 때 부터인가 세미나에 다니던 자매님에게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끊기 힘드려니 생각했던 술을 남편이 줄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을 향해 따발총 같이 무차별로 쏘아대던 자매님의 잔소리와 바가지도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기적같은 일이어서 제가 그 자매님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변화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그 자매님께서는 "나도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저 양반 저렇게 살다가 죽겠거니...저 양반 이때까지 저렇게 살아 왔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변화를 기대하겠는가 했었는데, 나도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었지만 변화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한쪽에서의 양보였습니다. 세미나 기도회를 열심히 다니던 자매님 쪽에서 어느 순간 먼저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님이 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런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머물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휴식처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도 잠시 지나갈 것이다.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는 이땅의 이방인이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 자매님에게 남편은 더 이상 웬수가 아니라 한 측은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중오심은 연기처럼 점차 사라져만 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변화"란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평생 추구해야할 가장 큰 과제가 바로 "변화되려는 노력"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육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에로의 변화, 암흑과 죄의 상태에서 광명과 부활의 상태에로의 변화, 이기적이고 자기폐쇄적인 인간에서 이타적이고 모든 이와 세상을 위해 개방된 인간에로의 변화,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노력이 지속될 때,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의 허물을 벗고 하느님 자비와 평화의 나라로 건너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매일 꾸준한 내적 성장과 쇄신의 노력을 통해 나날이 변화되고 그 결과 주님께 합일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변모를 위한 이 아침의 묵상
1.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될 수 있나요?" 하고 노랑 애벌레가 생각에 잠겨 물었습니다.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그것은 가능한 것이란다." 나비가 되고자 나뭇가지에 매달린 늙은 애벌레가 말했습니다.
2. 진정한 구도자는 주님의 품속이라 할지라도 거기 안주하지 않고 날로 새롭게 형성되는 사람입니다.
3. 자신의 진정한 존재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살되 집착과 이기적인 욕망과 소유욕이 없습니다. 그의 마음은 늘 무집착 속을 거닐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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