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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왈츠의 명수 예수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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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병영 쪽지 캡슐 작성일2001-08-09 조회수1,820 추천수8 반대(0) 신고

왈츠의 명수 예수 III

 

왈츠의 세 번째 박자는 다음의 리듬인 중 약 약으로 이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박자이다. 이 박자의 이음 없이는 완전한 왈츠를 구사하지 못한. 이 박자는 고도의 곡선과 유연성을 요구한다. 있는 듯 마는 듯 춤을 추는 상대와 스텝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잘못한다면 왈츠는 굳은 몸짓과 스텝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완숙의 단계에서 이 박자를 완전히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바로 세 번째 박자를 이 세상과 함께 추신 것이다. 고도의 곡선과 유연성으로 이 세상에 열린 마음으로 완전한 왈츠의 묘미를 그분은 보인 것이다.그러면 예수는 어떻게 이 세상과 왈츠를 추신 것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종교,. 사회, 인간관계 등은 이해관계에 따라 혼돈과 혼란, 고통과 상처, 불안과 초조, 어두움과 밝음, 전쟁과 평화, 이 모든 것들이 야기되는 것이다. 이 뒤섞인 세상 안에서 그분은 곡선과 유연성으로 이것들을 살아 오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끌어 안은 것이다. 그분의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이해관계의 뒤섞임 안에서 그분은 항상 하느님을 우선 순위에 두었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사랑하신 것이다.  병자들, 소외 받은 자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신 것이다. 나 중심의 이해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항상 너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풀어 가신 것이다.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모든 이해관계 안에서 우리는 항상 나 중심적인 것이다. 신앙생활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도 항상 나 중심인 것이다. 인간관계 안에서도 우리는 내 마음에 들어야 하고 내 입맛에 맞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상대는 죽일 놈이요 죽일 년이 된다. 상대에 대해 없는 이야기도 꾸며 비판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봉사 활동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의 저런 꼬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고, 저 사람은 저래서 문제라는 등,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을 나 중심적으로 흘려 버린다. 이 봉사가 얼마나 순수하지 자신에게 물어 볼 때 때때로 부끄러워 진다. 남이 나의 봉사를 알아 주지 못할 때 모든 것을 색 안경으로 보게 된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많은 경우 "마저 그 사람이 그래"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는 항상 잘 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예수는 우리가 어떠한 모습이든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함께 꺼꾸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왈츠를 추신 것이다. 상대가 왈츠에 미숙하여 스텝이 엉켜 넘어질 때 그는 함께 멋지게 이 스텝에 맞추어 넘어지듯 말 듯 하며 왈츠를 리더하신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상대가 미숙해서 넘어지면 이것도 못하는 둥, 이따위로 나를 망신 시킨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차이점인 것이다.

우리는 넘어 지는 것이 잘못되었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근시안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바로 함께 넘어 지는 것이 바로 힘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힘은 너와 하느님과 어우러지고 나를 비울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 모두 예수의 왈츠를 추어 봅시다!!

 -끝-

 

 

제   병  영 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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