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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연중 21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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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01 조회수2,186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1, 9, 1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25,14-30 (달란트의 비유)

 

(그것은)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 사람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는 각자에게 제 능력대로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즉각,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그것을 활용하여 다섯을 더 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둘을 더 벌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겼습니다.

 

많은 시각이 지나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함께 셈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다가와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내놓으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인은 그에게 '잘 했다,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종아, 적은 것에 믿음직스러웠으니 네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누려라' 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다가와서 '주인님, 저에게 두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인은 그에게 '잘 했다,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종아, 적은 것에 믿음직스러웠으니 네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의 기쁨을 누려라'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당신이 모진 사람이라, 심지도 않은 곳에서 거두시고 뿌리지도 않은데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나머지 물러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 속에 숨겼습니다. 보십시오, 당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은 대답하여 그에게 말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도 않은 곳에서 거두고 뿌리지도 않은 데서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다. 그렇다면 내 돈을 은행가들에게 내맡겼어야 했다. 그랬으면 내가 와서 이자까지 붙여 내 돈을 돌려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그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사실 누구든지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 넘치게 할 것이요,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진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너희는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아라. 거기서는 울고 이를 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묵상>

 

요즈음 읽은 책 중에서 사랑하는 벗님들께서 꼭 읽어보셨으면 하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소아암에 걸려 아홉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대만의 주대관 어린이의 시와 그림, 짧았던 삶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파랑새어린이 간)가 그것입니다.

 

대관이는 여덟 살 되던 해 치명적인 소아암 판정을 받고 15개월 가량의 혹독한 투병 생활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관이는 종양 제거 수술,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했지만, 계속 번져가는 암세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병 후 일년 쯤 지나 최후의 수단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습니다.

 

대관이는 절단 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

 

베토벤은 두 귀가 다 멀었고

두 눈이 다 먼 사람도 있어

그래도 나는 한쪽 다리가 있잖아

난 지구 위에 우뚝 설 거야

헬렌 켈러는 두 눈이 다 멀었고

두 다리를 다 못 쓰는 사람도 있어

그래도 나는 한쪽 다리가 있잖아

난 아름다운 세상을 다 다닐 거야

 

그러나 성공적인 절단 수술도 대관이를 살릴 수 없었습니다. 이미 암세포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고 더이상의 의학적인 방법이 오히려 고통만을 증폭시킬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재수술을 포함한 의료 행위를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의사 뿐만 아니라 대관이의 부모님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대관이도 함께.

 

"의료 기술의 출발점은 생명을 좀더 훌륭하게 보호하는 것입니다. 만일 의료가 고통만을 안겨 주고 그 뜻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면, 인생의 종착역을 평온하게 맞이하는데 방해만 할 뿐입니다. 치료를 포기하는 편이 어두운 장막과 고통을 안겨 줄 뿐인 치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홉 살 대관이는 이 모든 광경을 담담하게 지켜 보았습니다.

 

"엄마, 울지 마!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암 악마는 우리를 동정해 주지 않아."

 

"선생님들, 저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더 이상의 수술은 받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꼭 가르쳐 주세요. 저는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대관아, 우리는 의사지 신은 아니란다. 그러니까 네가 얼마나 살 수 있을 지 대답하기는 어렵단다. 네가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훌륭한 시를 쓰는 것처럼, 하느님이 언제 너를 데리러 오실지 그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일이야."

 

"암세포는 결국에는 죽나요?"

 

"암세포는 결국 죽지만, 네가 써서 모든 사람들을 감동 받게 했던 시는 하느님이 언제까지나 살아 있게 하실 거야."

 

"나, 또 하나만 얘기할게요. 선생님들, 간호사 누나들, 지금까지 절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치료해 주셨어요. 그래서 나,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소중한 생명을 끝까지 사랑했고 보듬어 안으려 했던 아홉 살 어린이 대관이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희망은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졌습니다. 비록 대관이는 여린 생명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지만, 대관이의 희망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피어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대관이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어느 그리스도인보다도 더 그리스도인답게 살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생명, 꺼져가는 생명을 마지막 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만 묻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내게 주신 것, 그동안 묻어 놓았던 것, 하나 하나 다시 꺼내야 합니다. 희망을 갖는 삶은 내 안에 묻어 둔 주님의 달란트를 깨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게는 이미 한쪽 다리가 없다"가 아니라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는 마음이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닌지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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