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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무런 애착심이 없다면..."(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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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미라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12 조회수1,361 추천수5 반대(0) 신고

 옷벗김을 당하고 난 후에 특별히 수도회 장상에게 완전한 순명을 하기로 하였는데, 지시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아주 작은 의향까지도 완전히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계속 노력을 하던 중, 1982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미사 거양 성체 때에

’하느님께서 지금 당장에 나를 데려 가시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아무런 애착심이 없다면 지금 당장에 데려 가신다해도 괜찮겠지!........’

 ’그럼, 너는 지금 아무 것에 대한 애착도 없니?’ 하고 자신에게 물어 보았는데,

깨끗이 ’그렇다!’ 고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제가 맡고 있던 아이가 9시부터 달리기 시작한 20Km 마라톤 경기 중에 고통 사고를 당하여 죽었습니다. 새벽 미사 끝에 원장 수녀님께서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날인데 그분이 태어나셨을 때에 들판에 있던 목동들은 그분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오늘 우리도 구유 위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가는 목동들과 같은 마음으로 달려가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그 때 영세한 지 만 1년밖에 안된 아이였지만, 매일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맡은 일도 언제나 변함없이 잘하였고, 학교 성적도 월 평균 점수나 과목별 평균 점수도 거의 비슷하게 별 차이가 나지 않게 잘했습니다(80-90점).  성격도 언제나 좋아 아이들이 평소에 "순호박"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주었고, 죽고 나자 옆반 아이가 "진호는 소죄도 없었을 거예요" 하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아이에 대해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1965년 교황 성하께서 인준하신 ’선종을 위한 화살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그 기도문은 이렇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님! 제 마음과 정신과 생명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예수 마리아 요셉님! 임종의 고민을 당할 때 저를 도와 주소서.

 예수 마리아 요셉님! 당신 은덕으로 안전히 죽게 하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그 해 7월 어느 날! 그 아이는 "그 기도 열심히 하면 정말 천당에 갈 수 있어요?" 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즉시 "그럼! 정말 천당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천당에 갈 수 있지!" 하고 자신있게 말해 주었었습니다.......

 또한 저는 9일마다 원하는 사람만 하도록 게시판에 9일기도 지향을 적어 놓았었는데,

그 아이는 매일 저녁 공부가 끝나고 자유시간에 어김없이 그 게시판을 보고 나갔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틀림없이 성당에 가서 묵주기도를 하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 제가 20Km 골인 지점에 막 도착하고 있을 때 옆반 아이가 저를 보더니 큰 소리로 "진호가 택시에 바쳐서 쭉 뻗었어요!" 하고는 자신의 두 팔을 쭉 뻗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하니 택시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고 하여서 마침 함께 갔던 원장 수녀님께 보고하니 다시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자고 하시어 되돌아 가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저는 아이의 안전보다도 제 체면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진호가 죽게 되면 내 체면이 뭐가 될까?..........’

 ’주님! 진호를 살려주십시오!’ 라고 애가달아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강하고도 아주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런 것은 제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일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는 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꼴이 너무나도 우스웠습니다.

 ’과연 네가 진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니? 넌 진정 진호를 사랑해서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이 아니라, 네 체면 때문에 그렇게 애타게 기도하고 있질 않았니? 진호는 하느님의 아들이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데려가시는 것이 더 좋으시면 데려가실 것이고, 여기에 두는 것이 더 좋으시면 살려주시겠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제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세 번이나 넘어지고, 옷 벗김을 당하면서 다 벗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제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에 빠지려고 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제가 잠시 거기에 빠지려고 하자 누군가가 거기에서 헤어나도록 저를 도와 준 것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드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가 갔다는 병원에 당도하니,

그 병원으로 오는 도중 아이가 죽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때! 그 병원에 있던, 소식을 전해준 아이들이 함께 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대화에서 우리 아이가 아니고 동명이인의 다른반 아이라는 것이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어처구니 없게도 흐르던 눈물이 뚝 끊어졌습니다. ’혹시 우리아이가 아닌데 내가 괜히?’ 하는 생각으로...............

 아니나 다를까 죽은 아이는 제가 맡았던 진호임을 확인했는데, 죽은 그 아이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왼쪽 머리와 손과 다리의 약간의 상처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입관하기 전까지 그 상처가 다 아물고 마치도 어린아이의 살같이 뽀얗고 부드러워 살아있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영안실로 옮긴 후 연도하려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성당에서는 전 식구들이 3일동안 묵주기도를 하고 4일째 되는 날 장례미사를 하였는데, 전체 분위기가 그 아이가 얼마나 잘살고 갔는지를 잘 말해주었습니다. 맡은 반 아이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기들도 진호처럼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으니까요.............. 그의 유품도 다 하나씩 나누어 갖기까지 하면서..............

 

 저는 그 날 밤 12시 쯤에서야 그 아이가 너무나 아름답게 살아 하늘나라 임금님의 생신 잔치에 초대받아 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아이는 이미 미사가 끝나고 마라톤을 시작할 때부터 아기 예수님이 계신 베들레헴 마구간을 향하여 달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뿐만 아니라, 4일 전에 영세한 저의 반 아이 하나와 사고가 났을 때 즉시 달려가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가는 중 그 아이의 임종을 지켜보신 신부님께서도 어떤 죽음을 예감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유독 그 아이만을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그 죽음을 통해 ’진호는 그 누구보다도 더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 없고, 하늘나라로 향한 마음이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깨끗하고 예뻐서 더 이상 이 세상에 두고 보실 수가 없어서 사랑 많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데려가셨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도 그 후 1년 동안 그 아이처럼 잘 죽기 위해 먼저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에 순명하고자(십자가에 못박혀 있고자)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였습니다.............  

 

[1983년 1월 12일 일기]

 주님! 성탄 아침 미사에서

 당신께서 생각하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고 거기에 맞아지게 살게 하소서.

 세상 모든 것에서 애착을 끊는다면 당신께서 불러 가실 것.......

 당신께서 언제 어느 때 부르시더라도

 "예!" 하며, 기쁘게 그 부르심에 응할 수 있으리라는 것...........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없이 산다면 언제 어느 때 당신께서 고통을 주시더라도

 "예!" 하며, 즐거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리라는 것..........

 사람이나, 소임이나,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을 끊고 당신께로 나아가게 하소서.

 어떠한 고통도, 당신의 어떠한 부르심에라고 능히 응할 수 있으리라...........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당신께서 주신 무한하신 은혜 감사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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