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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종은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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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24 조회수2,349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말씀(에즈 1,1-6; 루가 8,16-18)

 

종은 누가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사랑은 - 오스카 햄머스타인)

 

아침에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받았습니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두거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릇으로 엎어 둔 등불은 울리지 않는 종, 부르지 못하는 노래, 주지 못하는 사랑처럼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쓸모없는 것으로 남아있을 뿐이겠지요.  침상 밑에 둔 등불은 있을 자리를 잘못 잡아 그 목적에 위배되어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지도 모르겠네요.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아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가지고 있는 좋은 생각들, 아름다운 마음들도 밖으로 드러내고 알맞은 곳에 쓰일 때에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씀이겠네요.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져서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먼저 구절의 등불의 비유에서는 우리의 능동적인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면 이 구절은 반대로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렇다면 앞의 이야기와 모순이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마음에 감추고 있던 것의 귀중한 가치, 진가는 우리의 행동 여부에 관계없이 드러나고 알려지는 자체의 생명력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줄 알고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이야기가 아닐터이니 더욱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구절들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바로 경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하느님 나라의 진리, 그 말씀의 신비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세 구절의 결론은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 사람들에게 전파할 때만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능동적인 협조를 요구하면서도, 한편 말씀은 감추려고 해도 드러날 뿐 아니라 풍성하게 불어나서 점점 더 커지는 자체의 신비한 힘이 있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의 수동적이고 겸손한 수용의 자세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말씀)과 우리의 긴밀한 협조로 세상은 점차 빛의 나라로 바뀌어 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습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독서에서는 바빌론 유배중에 있는 백성에게 고레스 칙령인 귀환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고 있는데 그 복음을 듣는 백성이 일어나 자기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해방의 소식을 듣는 순간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능동적인 자세를 갖을 때, 복음은 자신의 것이 되며 자기의 땅에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실제로 살아가게 되겠지요.

 

오늘, 다시 시작하는 주간의 첫날 월요일입니다. 우리도 온갖 근심과 걱정에서 해방하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시는 오늘의 말씀을 듣고 해방의 종을 울리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주고받는 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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