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떤 죽음(연중 26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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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10-01 | 조회수2,154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2001, 9, 30 연중 제26주일 복음 묵상
루가 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예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포와 모시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라자로라는 한 가난한 자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그 집 문간에 누워 부자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들로]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더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습니다.
그러다 그 가난한 자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드니 아브라함이 멀리 바라보이고 라자로는 그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아버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의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다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길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얘야,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네가 생전에 복을 누렸지만 라자로는 그만큼 불행을 겪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심한 고통을 받는 거다. 그뿐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할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그러자 부자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님, 아버님께 청하오니,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사실 제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저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분들의 말을 들으면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안됩니다, 아브라함 아버님! 그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에게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부활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묵상>
"지난 3월 21일,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 정주영이 죽었다. - 중략 - 그가 죽자,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특사까지 33만명이 조문했고, 사이버 조문객까지 합하면 무려 백만 명이 넘는단다. 또 중국 정부와 유엔 사무총장이 애도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그는 가히 한국 현대사 최고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중략 -
그로부터 꼭 보름 전(3월 7일), 동대문야구장 공중 전화 부스 옆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또 다른 주검이 발견되었다. 이름 없는 한 노숙자다. 그 주검이 보름간 방치되기까지, 쥐들에 의해 얼굴과 손등이 뜯긴 처참한 몰골이 되기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존재였다. 2월 한 달 동안 그 공중 전화 부스를 이용한 사람이 무려 1,400명이나 되었다니, 어림잡아 700명은 되었을 전화 이용자 중 누구도 바로 옆 시신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사랑서나 죽어서나 철저히 익명인 상태였다. 시신이 발견되고서야, 신문에 기사가 나오고서야, 그에 관한 이야기가 비로소 작게나마 알려졌다.([한겨레] 2001년 3월 7일자)
48세 노숙자 김종식, 4남 3녀의 자식 중 어느 누구도 중학교엘 보낼 수 없었다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소작 일과 날품팔이를 전전했다고 한다. 희망을 갖고 뭔가를 해 보려면 번번이 세상에 속아 넘어가 주저앉아 버린 그는 끝내 노숙자로 전락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 채 술로 전전하다 영양실조와 추위로 가련한 생을 마감했다. - 후략 - " (김진호, 당대비평 2001년 여름호 머리글에서)
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모든 이의 관심 밖에서 잡초처럼 살았습니다.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꺼져가는 생명 바로 곁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밝은 모습의 사람, 슬픈 표정의 사람,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 흐느적거리며 정처없이 걷는 사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스러져가는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길만을 걸어갔을 뿐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주검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주검조차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습니다. 배고픈 쥐새끼 몇 마리가 유일한 벗이 되었습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김종식 씨, 그는 자신의 주검을 배고픈 쥐들에게 먹이로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것을 웅켜쥐기에 혈안이 된 세상 사람들에게 저항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아직도 이런 죽음이 있다는 것이. 살아 있음이 부끄럽습니다. 죽은 자가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있고, 산 자가 죽음의 처지가 되는 기막힌 현실 안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낯 두꺼움이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어가는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를 발견했다면 그를 살려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주검 옆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말했습니다. 나는 매달 수입의 일정 부분을 가난한 이들을 몫으로 내어놓았습니다. 나는 언제나 힘없이 이들을 쓰러뜨리는 사회 현실을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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