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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인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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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03 조회수1,830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 26주간 수요일 복음(루가 9,51-62)

 

오늘 복음을 예수를 따르는 신앙인의 유형과 연결하여 묵상해본다.

먼저 첫 번째 사람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다’고 나서는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전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발로 신자가 되겠다고 교회에 찾아온 사람을 말하는 듯하다. 이들은 목표가 뚜렷하고 방향만 마련해주면 저절로 따라 온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어느 곳도 목적이 아닌, 영원한 땅 하느님 나라가 그 목적임을 가르쳐주시려는 듯 예수의 말씀이 뒤따른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아브라함에게 내려진 야훼의 명령, "네 고향과 친족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구원의 역사는 불확실한 떠돌이의 삶을 요구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한 인간이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되었다. 출애굽의 역사도 그랬다. 주님과의 관계는 인간이 노예처럼 의존하고 안주하고 있는 상황들로부터의 해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출발도 "자기를 비움"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을 떨쳐내는 것에서부터 주님은 늘 뭔가를 시작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떨굼과 비움의 작업은 흔히 생각하듯이 ’무소유의 자유로운 삶’이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그리고 출애굽의 백성에게 약속했듯이, 하느님이 마련하신 땅으로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며 그 목적을 위해서 일시적인 나그네의 삶은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인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목표점을 끊임없이 일러주는 신앙교육이 필요하다.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얼핏보면 도덕적, 윤리적인 사람인 듯 보이는 두 번째 사람은 실은 거절도 응답도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일 경우가 많다.  부르심에 대해 그럴듯한 핑계를 대지만(여기서는 아버지가 세상을 뜰 때까지) 그렇다고 자신의 이유에 충실하지도 못한(효를 행하지도 못하는) 유형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들은 언젠가는 교회에 나오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누군가 오라고 하면 끊임없이 적합한 이유를 찾아낸다.  언제나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사람은 실은 자신의 용기 없음이나 게으름을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구세주가 바로 코앞에 나타났는데도 변명을 하며 거절할 도피형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쩌다 교회에 나왔다 해도 언제든지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 빠져나갈 사람들이다. 언제나 논리적인,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겐 특별한 체험이 필요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순간이 오면 이들은 그 때에야 주님을 찾게 되던지, 아니면 끝까지 영원한 자멸의 길을 선택하던지 하게 될 위기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체험과 함께 신앙의 결단, 즉 용기가 필요하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 주십시오". 마지막의 사람은 약간의 적극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사소한 것들에 늘 걸려 큰 걸음을 내디지 못하는, 한마디로 신앙의 진척이 없는 제자리걸음의 신앙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이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식구들에 대한 걱정,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은지에 대한 걱정....등등 걱정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이 최고의 걸림돌들이다.

 

이들에게는 부동의 확신이 필요하며 대범한 마음이 필요할 터인데, 세상의 걱정거리들을 일소에 날려버릴 확고부동한 신앙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산길은 내 경험상으론 불행하게도 일직선상의 산(山)이 아니라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러나 제자리는 아닌 나선형 계단과 같은 산(山)이다. 비록 더디지만 정상을 향한 걸음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사소한 걱정거리들에 구애받지 않는,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 도통의 경지도 바라보지 않겠나?  문제는 희망과 끈기다.

 

’쟁기를 잡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끈기있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제자됨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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