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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평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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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04 조회수1,956 추천수11 반대(0) 신고

우리가 추구하는 여러가지 가치 가운데서도

평화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위한 가장 큰 전제인 것같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진정한 평화가 없다면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평화의 사도라 불리우는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축일이다.

그래서 이 평화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보자.

 

1. 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다.

  미국의 대테러 공격을 앞두고 노벨상 수상자들 5명이 공격 반대성명을 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을 맞아 미사 후에 우리 모두 평화순례를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식사시간에 함께 나누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평화의 반대말을 전쟁이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평화는 두려움, 근심걱정의 반대말이라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그 말씀이 바로 평화이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세상사람들에게 해야할 인사

  또한 평화이다. 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 할 때의

  이 평화는 온갖 두려움과 근심걱정에서 해방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바로 이 인사를 형제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하도록 하였고

  수도회의 모토로 <평화와 선>을 정하기도 하였다.

 

2. 평화는 안정이나 복락을 의미하지도 재산이나 필요를 획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화롭지 못한 이유를 경제적 안정이 되지 않아서라던가 능력이 부족해서

  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나에게 이런저런 조건만 채워진다면 참으로 평화로울 것

  같은데라고... 그렇지만 이렇게 주어지는 평화는 일시적인 안정에 불과하지 참평화

  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생활의

  안정을 얻으면 그것이 곧 평화를 누리는 삶인줄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성 프란치스코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평화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평화는 인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조급하게 안정을 도모하기

  보다는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파문이 이는 물에게 빨리

  그 파문이 갈아 앉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물을 휘젓는다면 파문이 가라앉기는 커녕

  더 흙탕물이 되고 만다. 차분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파문은 가라앉고 고요가

  찾아온다. 인내심을 가지라.

 

3. 평화를 얻으려하기보다는 주려고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평화를 우리 것으로 획득하려고 너무 애쓰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얻으려 하지말고 그 평화를 다른 사람이 누리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평화가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신다.

  그 평화를 누릴만한 사람들이면 그들에게 평화가 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

  평화를 얻으려 집착하지말고

  평화를 나누어 주려고 애쓰라.

  그제서야 진정한 평화를 조금씩 느끼게 되리라.

 

4. 평화는 정의, 진실을 전제로 한다.

  정의평화는 이미 거의 한 단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만큼 정의와 평화는 함께 가는 것이다.

  보통 나는 정의는 좋은데 평화는 원치 않는다는 사람들이

  정치적 색채를 많이 띠고,

  반대로 평화는 좋은데 정의는 싫다는 사람들이

  안주자들인 것같다.

  복음적 가치는 이 정의와 평화가 함께 실현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는 만큼 평화를 추구해야 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만큼 또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는 자신의 정치성을 강요하는 그릇된 교설일

  뿐이요,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한 가식일 뿐이다.

  그래서 평화를 진정으로 추구하는 자는 정의를 위해서도 목숨을 바친다.

 

<평화의 사도>가 되라!

이것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

그리고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아닐까?

 

내가 먼저 평화의 사람이 되고

그 평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눔으로써

더욱더 평화의 사람이 되라고...

그래서 그 평화를 얻게 된 사람이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눔으로써

그야말로

평화는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되고

그때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얼마나 평화의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평화를 주는 사람인가?

나는 두려움과 근심걱정이 많은 사람은 아닌가?

나는 남에게 평화를 주기보다는 불안과 근심만 안겨주는 사람은 아닌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이 이 평화를 빌어주자.

매일하는 미사 안에서 평화의 인사 때도

정말 그 평화가 그대에게 함께 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며 인사하자.

매일 이 평화를 기원하고 빌어준다면

나는 평화의 사람이 된다.

예수의 참 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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