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작은 이에게 받아들여지는 기쁨(연중 26주 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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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1-10-06 | 조회수1,896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2001, 10, 6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루가 10,17-24 (제자들이 돌아오다, 감사기도·계시의 말씀·제자들의 행복 선언)
그런데 일흔 [두] (제자들)이 기뻐하며 돌아와서는 "주님, 귀신들조차 당신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탄이 번갯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뱀과 전갈을 짓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짓밟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것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악)령들이 여러분에게 복종한다고 기뻐하지 말고,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음을 기뻐하시오."
그 시간에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흥겨워하시며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계시하셨으니 아버지를 찬양하나이다. 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처럼 이루어졌나이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니면 아무도 아들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아들과 그리고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아버지가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제자들을 향하여 따로 말씀하셨다. "복되어라,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사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여러분이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습니다."
<묵상>
성체를 모시고 간 사제의 손을 잡아주시는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 해맑은 웃음 머금고 달려와 품에 안기는 철부지 어린이, 눈빛만으로 서로의 사랑과 따뜻함을 나누는 학생들, 바쁜 시간 쪼개어 가면서 함께 하려고 애쓰는 청년들, 지친 삶의 넋두리를 편안하게 풀어놓는 교우들, 신부님 떠나시면 안되는데... 마냥 아쉬워 하시는 교우 아주머니, 부족한 보좌신부를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격려해주시는 주임 신부님, 주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서로의 삶을 지켜봐주시는 수녀님들, 한 푼 적선에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는 눈 먼 아저씨,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사랑하시는 부모님, 함께 하지 못하는 안따까움 애써 감추며 나를 믿고 지켜보는 가족들, 가끔 전화로, 편지로 나에 대한 기억을 확인시켜주는 친구들, 오랫만이네요... 반갑게 맞아주시는 술집 주인 아저씨,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 여러 사람들...
참으로 작은 이들입니다. 가까이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곤 하는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아는 이들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이들, 그렇지만 고마움을 쉽게 잊어버리는 이들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알만한 유명한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나에게 다가오기를 원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으쓱해지는 기쁨에 젖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생각합니다. 슬기롭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했지만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그 기쁨을.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기뻐하는 제자들보다, 무지랭이같은 제자들이 당신을 알게 된 것을 보며 더욱 기뻐하시는 예수님, 흥에 겨워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나에게도 작은 이들이 있습니다. 나를 아는 이들, 나를 순수하게 받아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기쁨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도 당신의 기쁨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이 기쁨에 취해 나 또한 아버지 하느님께, 예수님께, 그리고 나를 받아 준 많은 작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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