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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돌멩이에 맞아 죽은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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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1-10-17 조회수1,97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호된 꾸짖음을 듣는다.

  예수님께 꾸중을 듣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운향과 박하에 대한 십일조까지 철저하게 바쳤던 사람들이다. 운향과 박하는 음식의 향료로 쓰이는 채소인데, 자신이 소유한 텃밭 등에 미소한 양만을 재배하던 채소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미소한 소출 중에서도 1/10세를 틀림없이 봉헌한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지만,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들이 십일조를 바치는 삶에는 철저했으나,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데는 소홀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열심한 개신교 신자분이 교육계에 몇 십 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임을 하였다. 그리고 받은 퇴직금이 1억 5천여 만원이었다. 그런데 그 개신교 신자분은 퇴직금을 받은 그 날, 그 퇴직금의 1/10인, 일 천 오 백 만원을 교회에 봉헌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분도 있다고 한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열심한 개신교 신자분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열심한 개신교 신자분들은 주일에는 모든 일손에서 손을 떼고 쉰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그 신자분도 주일이기에 쉬어야만 했는데, 같은 업종의 사람들끼리의 약정 때문에 주일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놓고 장사를 해야만 했는데, 주일 날 들어온 수입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교회에 봉헌한다고 한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우리 성당에 다니는 신자분들은 마치 자신이 예수님이나 된 듯이, 그러한 개신교 신자분들을 향하여 비아냥거리기가 쉽다. "십일조만 열심히 바치면 뭐하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하고 말이다. 그러한 비판을 하는 나는 과연 그 개신교 신자분들과 같이 십일조를 바치고 있는가?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다면 사랑실천은 제대로 하고 있는가?

  포도밭 길을 가던 한 사람이 포도 한 송이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따서 집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그 포도를 잘 씻어 TV의 뉴스를 보며 한 알씩 맛있게 먹는다. 뉴스 내용을 보니, 사기 공갈로 몇 억을 횡령한 범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러자 그 사람은 포도 씨를 내 뱉으며, "저 죽일 놈이 있는가? 어떻게 남의 것을 저렇게 해먹을 수가 있어! 양심이 썩었군"하며 격분한다. "자신이 행하면 로맨스로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자신 역시 훔쳐온 포도를 먹으면서, 자신이 행한 것은 도둑질이 아니다. 많은 포도 중 표시도 나지 않을 정도이고, 그까짓 포도 한 송이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가던 길손이 길에 놓여있는 돌멩이 하나를 무심코 ’뚝’하고 찼는데, 그 돌멩이에 맞아 죽은 개구리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기 입장에서 아무 것도 아닐 뿐이지, 그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불행이나 고통을 주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호되게 꾸중을 듣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꾸짖는 것은 저를 꾸짖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하고 나선다. 사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기 혼나거나 손해 볼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면 살며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예사이다. 그런데 복음의 율법학자는 그렇지가 않다. 의리감 때문에서 그렇게 나선 것일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자신만큼은 바리사이파 사람과는 달리 떳떳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아란 듯이 예수님께 나선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러나 "너희 율법학자들은 남에게 무거운 짐을 잔뜩 지워놓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들이다."하고 호되게 꾸중을 듣는다.

  위 이야기에서 남의 포도밭에서 포도 한 송이를 아무런 생각 없이 따다 먹는 삶이 몸에 밴 사람들은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손해 아픔 그리고 상처와 고통을 준 적이 없다며 교만에 빠질 수가 많다.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것은 무엇인가? 십일조도 중요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이웃들에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의와 사랑은 무엇인가?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아량과 친절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의 언행에 대해 늘 조심하고, 남에게 상처와 아픔이 아니라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 되려고 늘 재고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들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십일조를 철저하게 바치면서도 당신의 정의와 사랑 실천에는 무감각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기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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