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나라를 테러하는 간 큰 사람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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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12-13 | 조회수1,946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대림 제 2주간 목요일 말씀(이사 41,13-20; 마태 11,11-15)
지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한 나라들에 대해 테러를 가하고 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해왔다."는 이상한 말씀이 나온다. 실체도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기에 폭행당했다는 것인가. 이 말씀에 의하면 ’하늘나라’는 분명 사람들 가까이 있었던 실체임에 틀림없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첫마디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는 말씀이시다.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돌려서 ’하늘’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하느님나라’이다. 그러니까 ’하늘나라’, 천국(天國)이란 바로 신국(神國)을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신국(神國)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기에 ’하늘나라’는 저 하늘 멀리 있는 곳도 아니고 종말에나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는 어떤 세계도 아니다.
예수님의 시대는 당시 널리 퍼져있던 묵시문학의 영향으로, 쿰란 근처의 동굴에서 엄격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악하고 불완전한 이 세상은 끝이 나고 하느님이 통치하는 완전하고 선한 새 세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무관한 이 다음에 오는 어떤 세상이 아니며,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상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 가까이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세상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기에 지금, 여기서, 당장 회개가 필요함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순간에 바로 코 앞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때, 정말 ’기쁨’은 내 ’소식’이 되는 것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선포가 똑같은 것으로 나오는데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늘나라를 폭행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대목 바로 앞서 세례자요한은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투옥되어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이다.(11,2) 그는 얼마 후에 참수될 운명인 것이다. 또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 놓고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23,13) 이처럼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그야말로 힘과 권세로 사람들 가까이 와 있는 하늘나라에 제동을 걸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일반 백성들은 바로 다음 대목의 말씀처럼 장터에서 피리를 불어도, 곡을 하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무관심의 폭행을 가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우리도 폭행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나의 복음’으로 만들지 못하는 고의적인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폭행이 아닌가. 예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대림시기가 아무리 성탄, 재림을 기다리는 시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늘 언제라는 시기를 정해놓고 그 때가 되면 무엇을 한다고 계획을 세우고 기대를 걸고 산다. 그러나 막상 기다리던 성탄이 다가오면 그 날은 부산하고 들뜨기 일쑤이다. 여러가지 행사에 치우치기 십상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럽게 끝날 때도 많았다. 올해는 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미리 회개하고 미리미리 성탄을 맞으면 어떨까? 종말에나 있을 재림을 기다리지 말고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살아가면 어떨까? 이미 하느님나라는 바로 코 앞에 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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