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족보에 담긴 뜻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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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12-17 | 조회수1,822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대림 제 3주간 월요일 말씀(창세 49, 1-10; 마태 1,1-17)
예수님의 족보는 루가복음과 마태오복음에 나오는데 둘의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그 내용을 비교해보면 마태오복음은 전체가 42대로 맨 위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요셉(마리아)에게로 내려오고 있고, 루가복음은 모두 77대로 예수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담에게로까지(마지막엔 하느님) 올라가고 있다. 게다가 조상들의 이름도 맞질 않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님의 족보는 어떤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진짜다.
성서의 족보는 일반 가계를 설명하는 족보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족보는 주로 사제들이 즐겨 기록했는데 조상들이 누구였음을 소개하려는 목적보다는 대부분 하느님의 약속이나 축복이 세세대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을 있게 한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의도가 주인공인 것이다.
예수님의 족보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조상이 누구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선포하기 위해 채택한 하나의 서술 방식이다.
마태오복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으로 귀결되는 구원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전성기인 다윗의 시대까지 14대, 최악의 쇠퇴기인 바빌론 유배까지 14대, 그리스도까지 14대로(정확히는 13대) 다분히 의도적으로 구성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역사의 흥망 성쇠를 모두 집약하여 완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초점을 두면서 완전수 7의 배수로써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러한 사상은 구세사의 어머니인 사라, 리브가, 레아 등의 이름은 생략하면서도, 굳이 언급한 네 명의 여자들의 면모를 볼 때 더욱 확실시된다. 즉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바쎄바)는 모두 이방인이거나 비정상적 관계로 자손을 잉태한 여자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족보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들을 기어이 끼워 넣은 복음사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유다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성조들이나 기름부음 받은 왕뿐만 아니라 신분이 낮은 여자들이나 죄인들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겠나?
더불어 예수는 비록 인간의 역사 안에 다윗의 후손으로 요셉의 가계(家系)로 오셨지만 실은 요셉과는 관계없이 마리아에게서 나신 분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처럼 족보는 "예수는 누구신가?" 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복음은 유다인을 상대로, 루가복음은 이방인을 상대로 예수가 누구신지를 선포하는 복음이다. 그러므로 루가복음은 유다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아니라 온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로, 마침내는 아담을 빚으신 ’하느님’께로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의 범위를 ’온 인류’로 명시하고 있는 셈이다. 숫자 77도 완전수가 겹쳐짐으로써 완전하고 충만함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가지의 족보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인생사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여 주실 것이고, 그분 안에서만이 우리의 허물과 죄스러움마저도 구원될 것임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는 것을. 또한 그분이 당신의 신분을 낮추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듯이 우리도 겸손한 사람으로 서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함을. 그리하여 구세사의 족보에, 예수의 족보에, 그분의 자녀로서 우리 모두가 올라야 함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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