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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은 이라도 크다(마태11,1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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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재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1-12-18 조회수1,665 추천수11 반대(0) 신고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 미사 복음 ; 마태오 11, 2-11>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마태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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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라도 크다(마태11,11)

작은 이라도 크다(마태11,11)

작은 이라도 크다(마태11,11)

 

며칠 전 우연히 텔레비젼 방송에서 연기상을 받고 좋아하는 안성기를 보았다. 아마도 몇년 전의 시상식을 녹화한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웬걸 ! 모습을 보니 과거의 안성기가 아니라 요즘의 약간 나이가 든 안성기였다. 방송에서는 계속하여 왕년의 최우수 주연상을 탄 안성기씨가 최근 다시 <무사> 등의 영화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열연으로 조연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연기자 안성기의 참된 모습이라고 했다. 나도 그순간 과연 맞는 말이다고 무릎을 쳤다.

 

얼핏 생각하면 "상에 대한 욕심도 많구나 !

한번 최우수상까지 받았으면 이젠 상에 대한 욕심을 접어두어야지.

후배들을 생각해야지. 철도 모르고 설치다니 ?

더군다나 최우수상을 받은 후에 조연상이 다 뭐람 ?"

이런 생각도 들만했다.

 

그런데 안성기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게 아니다.

"자신은 처음 조연상을 받을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최선을 다해 열연했으므로 조연상 후보에만 올라도 정말 기뻐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의 새 앞길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잘 인정해주지 않는 낮고 낮은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안성기씨의 조연상 수상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과거의 최우수 주연 연기자가 이제는 조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감격하고 만족했으니, 그 모습을 보았을, 앞으로 최우수상을 꿈꾸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참된 연기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 충격 속에 강한 자극을 주었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자신의 황금 시대를 가장 오랫동안 구가한다"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야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현직에 있을 때는 전 세계의 제왕처럼 그 권한을 행사하고 수많은 존경과 영광을 누리지만 은퇴 후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까지 한다는 말도 들었다. 잘못 와전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예수회의 중국선교사이자 동아시아 복음전파에 결정적 공헌을 하신 마태오리치 신부님이 쓰신 <<천주실의>>라는 한문 교리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일찌기 스승의 비유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생은 이 세상에서 무대 위의 배우와 같다는 것입니다.

 임금, 양반, 하인, 창기 등은 모두 한때 배우로 분장하고

 그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연극을 마친 다음에는 배우로 분장했던 꾸밈을 모두 벗어 버립니다.

 

세상은 연기자의 무대와 같다는 말씀 ! 그러므로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역할을 얼마만큼 창의적으로 개성있게 잘 소화해냈는가?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과연 평범하고도 어려운 말씀이시다.

 

복음에서 왜 예수님이 그처럼 요한을 높이 추켜 세우시다가 갑자기 낙하산도 없이 하늘나라 어린이 보는 앞에서 맨땅으로 추락을 시키셨는가?

혹 예수님이 요한에게서 라이벌의식을 느끼셔서 그런 말씀을 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이다.  

 

그 비유를 깨닫기 위해서는 요한의 역할에 대해서 객관적인 자리매김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요한은 다만 구약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이자 최대의 예언자였을 뿐, 신약의 하늘나라와는 확실히 다른 차원을 살다가 간 불행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이에게 메시아를 예비하도록 외치고 또 외쳤지만, 예수님을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로서 확고하게 믿지 못하고 예수 아닌 또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고 의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이땅에 사는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이’보다도 작았던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이’로서 오늘 하루도 이땅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대예언자 요한이 볼 수 없었던 하늘나라의 현재하심을 매일매일의 말씀을 통해, 삶의 실천을 통해 느끼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도 매일매일 크고 작은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큰 무대 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늘나라의 작은 이’가 되는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보잘것없는 이 죄인을 당신 무대의 연기자로 써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매일매일의 주어진 과제에 대해 항상 불만과 슬픔과 고통을 느끼면서

제 작은 역할을 바꾸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당신은 그런 저를 애써 모른 체 하셨습니다.

당신은 감정도 없는 차가운 하느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인생이란 무대가

단 한편의 단막극으로만 마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막극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제게 주어진 역할을 불꽃을 튀우며 창작하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이런 저에게

최우수 조연상을 주시지 않더라도

저는 당신의 흐뭇해하는 한번의 미소로서,

저의 모든 괴로움을 날려보낼 것입니다.

 

당신께서 늘 굽어보고 지켜주시는 저는

진정으로 행복한 ’하늘나라 작은이’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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