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리아가 먼저 태어나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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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1-12-20 | 조회수1,85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말씀(이사 7,10-14; 루가 1,26-38)
즈가리야 부부나 마리아는 모두 아이에 관한 한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예가 없어도 우리는 인간의 생명은 인간에게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아이의 생명은 물론 성품이나 소양도 부모가 마음대로 취사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기원은 절대 ’밖의 세계’에서 온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온 세상 모든 것이 절대 타자인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종교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는 대답은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았다는 말이다. 즉 종으로서의 사명을 깨달았다는 말이 된다. 그 깨달음은 혼자서의 수도(修道)나 각성을 통해 오성(悟性)으로 알아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명이 ’밖(초월)’에서 왔음을 깨닫고, 생명을 주신 분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분을 향하도록 우리 생명이 설계되어 있어서 그분의 부르심을 듣고 찾고 만나 그분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기뻐하여라. 은총을 가득히 입은 이여!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천년 전의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만 선사되는 복음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을 듣고 찾고자 하는 모두에게 선사되는 복음인 것이다.
생의 근원이며 주인이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이제 허무한 것이 아니며, 우연한 것이 아니며, 단순한 인과 관계로 파생된 인연(因緣)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인간의 삶은 이제 이 말씀을 ’곰곰이’ 받아들이는 사람 안에서 새롭게 잉태된다. 즉 그 사람의 행복은 물론 고통마저도 깊고 오묘한 의미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래서 그의 삶은 그럭저럭 돌고 도는 운명(運命-돌 운, 목숨 명)이 아니라, 생명을 선사하신 분의 계획과 의도를 실현해야하는 사명(使命)을 기쁨으로 받아 안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신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새롭게 탄생하여 그 사명대로 신나게 살아가는 것이 "예수 탄생 예고"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는 대답으로, 우리 가운데 마리아가 먼저 무수히 탄생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는 단순히 신앙인의 모범으로서 칭송을 보내야 할 성서나 성화에 붙박힌 인물이 되어선 안된다. 마리아께 대한 최대의 선물은 복음을 잉태하고 세상에 낳아주는 무수한 마리아들이 오늘도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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