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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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2-01-02 | 조회수2,299 | 추천수28 | 반대(0) 신고 |
2002, 1, 2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기념일
요한 1,19-28 (세례자 요한의 증언)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재관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파견하여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게 하였을 때 그는 고백하며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요? 당신이 엘리아요?" 하고 묻자 그는 또 "아니오" 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 (하고 묻자 다시)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 주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오?" 하였다. 요한이 말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라’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요."
그런데 파견돼 온 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요한에게 질문하여 말하기를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세례를 베푸는 거요?" 하였다. 요한은 대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못합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 베다니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묵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더라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알아 주지 않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 때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평가를 놓고 반응하는 태도는 다르기 쉽상입니다.
누군가로부터 과대평가를 받을 때 조금은 쑥스럽지만 내심 좋아하면서 말할 겁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잘난 놈이 아니야’라고. 그러면 상대방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어쩜, 겸손하기도 하지.’라고. 이 정도가 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용기 있게 이야기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를 시정하려다 겸손한 이미지까지 덧붙여진 것을 즐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양상은 달라집니다.인내심 있는 사람이라면 ’뭐 그럴수도 있지. 언젠가는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거야’ 라고 생각하며 넘어가겠지만, 성격이 좀 급한 사람이라면 ’넌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라고 그 자리에서 집고 넘어갈 것입니다. 심하면 의가 상해 완전히 갈라지기도 합니다.
사람!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기에, 하느님으로부터 고유의 사명을 받았고 하느님과 함께 하기에.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때에 사람은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주어진 인상이나 느낌, 평가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때로는 내팽개치고, 때로는 적당히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감출 때 사람은 추합니다.
세례자 요한!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대평가를 과감하게 떨쳐내었던 용기 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엘리야나 다른 예언자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옹호하던 이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그러면 당신이 왜 세례를 베푸는 거요?’라고 비아냥거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라’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로서의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그런 만큼 소중하게 품어 안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싫든 좋든 나에 대한 느낌, 생각, 평가를 마주하고 되겠지요. 그 순간 순간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것이 비록 나를 깎아 먹는 것이라 해도, 이렇게 나를 깎음으로써 오히려 나는 더욱 소중한 주님의 일꾼이, 아름다운 주님의 사람이 될 것이니까요. 이렇게 나를 깎고 깎아 더 이상 나를 알아주는 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럼으로써 더욱 더 주님께 있는 그대로의 나는 받아들여질 수 있을테니까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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