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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사람들이 '예' 할 때, '아니오'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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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1-02 조회수1,890 추천수6 반대(0) 신고

모든 사람들이 ’예’ 할 때, ’아니오’한 사람, 모든 사람들이 ’아니오’할 때, ’예’ 한 사람.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말씀(요한 1,19-28)

 

요한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하나로 압축시켜놓은 ’말씀 찬미가’를 서론처럼 먼저 내어놓고 나서 그 노래를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본론)

 

제 일막의 커튼이 올려지고, 무대의 조명이 켜지니 한 사나이가 서 있다. 곧이어 몇 명의 제관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뒤따라 나왔다. 그들은 "당신은 누구요?" 하고 사나이에게 물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는 사나이의 대답으로 보아 상대방의 질문의 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엘리야요?" 라는 물음에 그는 또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하고 다시 묻자 또 "아니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제 제관복장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예언자’도 아니라는 사나이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 주어야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오?" 조급하게 묻는 이들은 ’유대인들이 사나이의 정체를 알기 위해 파견한 예루살렘의 제관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이라고 복음사가는 해설한다.

 

그러니 사나이의 정체는 온 유대인의 궁금증의 대상이었다는 말이다. 사나이가 지금 자신을 밝히려는 말 한마디에 쏠린 눈, 눈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라’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요."(이사40,3)

 

사람들은 일순간 실망한다. 예루살렘에서 술렁이던 숱한 소문을 듣고 유다 광야로 올 때까지 그들은 얼마나 긴장했었는가?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드디어 백성을 찾아왔는가? 그 정도는 아니라면, 하느님이 직접 찾아주시기에 앞서 보내주신다던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왔는가?(말라 3,23) 아니면 모세 이후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보내 백성을 이끌어주시겠다던 ’그 예언자’(신명 18,18)가 왔다는 것인가? 유대 백성들은 어서 빨리 진상을 알아다주기를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분들 중 하나가 오셨다는 것은 자신들의 민족에 다시 서광이 비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라기(BC. 350년 경) 이후로 이렇다 할 지도자 하나 없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이민족들은(그리스, 로마) 교대로 자신들을 짓밟았다. 이제 하느님은 당신의 전갈을 들려줄 예언자 한 명 파견하시지 않는다. 수 백년 동안 그렇게 자신들을 버려두셨던 하느님이 아니신가? 그런데 광야에 진짜 예언자같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온 백성은 수백년의 잠에서 깬 듯 희망에 부풀어있었던 것이다.

 

이제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이 실망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사나이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왜 세례를 베푸는 거요?" ’아무것도 아닌 자가 왜 세례를 베풀며 백성을 현혹시키는’ 지 그 권한을 묻고 율법적으로 합법인가를 가려보겠다는 말투다. 그들은 율법이라면 빠삭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못합니다."

 

자신이 비록 민족의 사명을 밝혀주고 백성들의 희망을 충족시켜줄 고대하던 인물은 아니지만(그런 의미에서 No!),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그 사람들 가운데 서 계실  어떤 분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인한다(이런 의미에서 Yes!).

 

자신의 뒤에 오실 분의 정체와 위격을 알아보고 그분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이 사나이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복음사가가 ’말씀 찬미가’에서 이야기한, ’빛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인(1, 6-8. 15.) 요한이었다. 자신의 정체의(존재의) 의미가 바로 자신의 사명임을 알고 있는 멋진 사나이.

 

모든 사람이 기대와 희망을 갖고 몰려와도 아닌 것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고 배격해도 빛과 희망을 찾아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다.

 

각종 선거가 있는 임오년 새해의 업무가 시작되는 첫 날이다. 마침 오늘 복음도 요한 복음에서의 첫 날의 이야기다. 새해에는 특히 민족의 앞날을 이끌어 줄, 희망을 안겨줄 진정한 봉사자, 바로 세례자 요한과 같은 멋진 지도자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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