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적의 주체는 누구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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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2-01-08 | 조회수2,306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주님 공현 후 화요일 말씀(마르 6,34-44)
파견 나갔던 제자들이 돌아오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쉬게 하려고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가시려 했으나 군중들은 어느새 지름길로 달려와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예수께서 많은 군중을 보시고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여러모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마르꼬복음에서는 어디까지나 참된 가르침으로 이끌어 줄 목자가 없는 백성들의 처지를 측은히 여기셨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어느덧 식사시간도 꽤 지나 이미 늦은 저녁이 되었다. 그러니 그들을 돌려보내 주변의 농가나 마을로 물러가서 먹을 것을 스스로 챙기게 하는 것이 책임있는 목자의 할 일이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오" ’아니,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해도 마땅찮으시다면 여태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가르침에 열을 쏟으신 분이 책임을 져야지 어째서 제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시는가?’ 결말은 제자들이 가지고 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만 해도 광주리 열두개를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어떤 본당의 주일학교 교사가 아이들에게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 모인 오천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온 것들을 모두 내 놓아서 그런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고 강론하였다. 그러니 나누는 삶이 이런 큰 기적을 만든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덧붙인 "예수님도 인간이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라는 말이 화를 불러 일으켰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당신, 이단이 아니냐’는 말까지 하시며 화를 내셨다고 한다. 자신은 어떤 신부님의 글을 인용한 것뿐이라고 억울해 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말을 자주 들었지만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복음은 분명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풀러 서로 나누어 먹었다고 기록되어있지 않다. 기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주님이셨다. 제자들의 작은 것으로 기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이 그것을 받아서 축복하시고 떼어 주시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내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바치는 것이 될 때, 결국 주님의 축복으로 엄청난 기적을 이룬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를 돕고 서로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서로를 나눈다는 것도 주님께 봉헌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자칫 자기 과시나 교만, 자기 만족의 부정적인 경향에 빠질 수 있고, 상대방에겐 도움이 아닌 상처를 주기가 십상이다. 결국 지속적인 나눔도, 사랑의 나눔도 되기 어렵다.
나누는 삶은 이렇게 먼저 주님께 작은 것을 봉헌한다는 오롯한 마음가짐으로 행해야 양편 모두를 사랑으로 배불리고도 남아, 그를 계기로 도움을 주어야 할 보다 많은 사람들까지도 챙겨줄 수 있는 넉넉한 여분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선행되어야 혹시 큰 기적을 만든다해도 끝까지 겸손할 수 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주라고 하면서도 결국 주님의 손으로 마무리하시는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겠는가.
또한 단순히 현실적인 필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목자로서의 주님과, 양들인 우리와의 올바른 관계를 가르쳐주시려는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푸른 풀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쉬게 하시며 먹여주시는 예수는 시편에서(23장) 노래하던 우리의 목자, 바로 주님이심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풀밭에 질서있게 앉히시고 먹이시는 구절에서도 목자로서의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라는 복음사가의 힌트가 구석구석 숨어있다. 그러므로 위의 교사가 말하던 ’인간 예수’로서만 그분을 바라본다면, 불가능한 것을 써놓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 나누어 큰 기적을 이룬다해도 결국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시고 먹여주시는 분은 목자이신 주님이시다. 이 대목의 서두에는 파견나왔다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께 보고하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큰 일을 이룩했어도, 그것 역시 파견하신 분의 일이었음을 설명하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이것이 제자됨의 근본자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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