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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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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2-01-24 조회수1,87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학자 기념일 말씀(마르 3,7-12)

 

오늘 복음에서는 ’해리슨 포드’가 아닌 ’예수’ 주연의 ’도망자’가 상영되고 있다.

예수를 쫓는 수많은 사람들은 유다와 예루살렘뿐만이 아니라 에돔, 요르단 건너편, 띠로와 시돈에 사는 사람들까지 갈릴래아 호숫가로 몰려들어, 실로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인근 전 지역에서 몰려들어왔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밀어닥치는 많은 병자들을 피해 호수에 거룻배를 띄우고 그 위에 오르시는 예수, 그리고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시는(3,13-19) 예수의 모습이 이어진다.

 

요한복음에서도 빵의 기적을 베푸신 후, 당신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 제자들을 배로 피신시킨후 당신은 산으로 피해가신다.(요한 6,15)

 

복음서 저자들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일생을 헌신하신 예수님의 구원자로서의 모습을 전해주면서도 동시에 이처럼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시는 모순된 모습도 함께 전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과연 무엇을 피해 달아나시는 것일까?

오늘 복음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불같이 일어나는 예수의 인기(人氣)가 주된 원인인 것같다.

그것뿐이었을까?

 

사실 예수의 일생은 필사적인 도망자의 삶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광야에서의 빵의 유혹은 단순한 빵의 차원을 넘는 물욕(物慾)으로부터의 도망이었고,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말씀처럼 안락한 삶으로부터의 도망.

왕으로 모시려는 사람들을 피하시는 모습에서 드러난 권력과 지배욕으로부터의 도망.

바리사이 사람들과의 마찰에서 보여지는 불의와의 타협으로부터의 도망.

수제자가 간청하는 안전한 삶으로부터의 도망.

어머니와 친척들의 간곡한 청을 끊어내는 사사로운 인정으로부터의 도망.

심지어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싶은 자기 자신의 뜻으로부터의 철저한 도망.

 

형태를 달리한 유혹자(誘惑者)들.

언젠가 유혹자(誘惑者=악마=디아볼로스)와 정의(正義=디까이오쉬네)의 희랍어 어원은 같다고 들었었던 것같다.

즉, 우리를 유혹하는 유혹자는 언제나 정의의 옷을 입고 그럴듯하게 나타난다는 설명과 함께....

 

 

예수의 일생은 시시각각 형상을 달리한 유혹자들에게서 추호의 망설임도 뒤돌아봄도 없는 도망의 연속이었다.

그럴싸한 정의(正義)의 무기를 가지고 자신을 가두어두려는 수많은 ’제럴드’ 형사들에게서 끊임없이 달아나는 사면초가의 삶이었다.

 

 

그런데...

도망자 예수의 삶은 초조하지 않았다.

도망자 예수의 삶은 비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고 유유자적한 자유인의 모습이었다.

유혹자들에게 ’쫓기는’ 삶이 아닌, 자신에게 밀려드는 온갖 유혹들을 ’자진해서 피하고 내치고 절단해버리는’.....’가차없이 쫓아 내버리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래서 ’정말 어려운 출가’(出家)는 수많은 유혹자들 속에 살면서도 그들이 주는 달콤한 유혹들을 단칼에 끊어내는 절단의 삶인 것이다.

실상 어디로 피한들 나를 가둬두는 욕망에서, 나를 구속하는 유혹에서 ’출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버리고.... 세상을 피해서... 세상을 등지고...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을 껴안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끊어낼 것은 끊어내고, 끌어 안을 것은 끌어 안는 것,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며, 진정한 구도의 길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일생 쫓고 있는 것들을 피해 달아나시는 주님.

우리가 일생 피해 달아나는 것들을 굳이 찾아다니시는 주님.

 

그분에게는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고 만족이 있는데....

우리는 온갖 것의 노예로 끌려다니느라 한순간도 평화롭지 않으며 자족함도 없다.

 

아! 그분의 삶과 우리의 삶이 반대편으로 가는 평행선인데....

언제 주님의 옷자락 끝인들 만져 볼 수 있을까?

 

 

추신: 작년에 써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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