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나라의 돌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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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태범 | 작성일2002-03-01 | 조회수1,368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사순 제2주간 금요일 (2002-03-01) - 야곱의 우물에서 독서 : 창세 37,3 - 4.12 - 13ㄱ.17ㄴ - 28 복음 : 마태 21,33-43.45 - 46
[하느님 나라의 돌들]
그때에 예수께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고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21,33-43.'45-46)
서울 시내 일반 버스의 내리는 문을 보면 가운데 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언젠가부터 눈에 띄긴 했지만 나는 구태여 그게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나를 지탱시켜 주는 고마운 지팡이쯤으로 여겼다. 그러다 한 장애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게 되었다.
버스 내리는 문의 그 분리대가 장애인들에겐 얼마나 원수 같은 줄 아느냐고. 승객들이 두 줄로 빨리 내리라고 해놓은 그 분리대 때문에 휠체어는 결코 내릴 수 없다고.
그래서 아예 문밖 출입을 할 생각을 안 하노라고.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조차 ‘빨리 빨리’의 의미였구나, 그리고 그 ‘빨리 빨리’ 때문에 장애인들의 세상 밖 삶에 대한 그나마의 희망도 무너져 내리는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용했구나 싶어서.
아마도 ‘빨리 빨리’와 ‘일등 콤플렉스’는 우리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 단어이지 싶다. 세상은 우리더러 ‘더 빨리!’를 외치고, 경쟁에서 살아 남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고 위협한다.
여기에는 저마다의 다양한 몫이나 귀한 존재라는 공존과 상생의 개념이 설 자리가 없다. 소수만 살아 남고 대다수는 주저앉거나 뒤에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과연 정의로운가, 따라갈 가치가 있나 묻게 된다.
그런 시대의 흐름에 우리의 영혼과 삶을 맡긴다면 모퉁이돌을 버리고 집을 짓는 사람처럼 될 것이다. 스스로 버려진 돌이 되시고 그런 돌들을 일으켜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는 예수님.
그분께서는 빨리 빨리와 일등 콤플렉스가 떨궈버린 우리들이 아주 귀하고 귀하기 짝이 없는, 하느님 나라를 지을 튼튼한 돌들, 아름다운 돌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장영예(가톨릭 파트너십 연구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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