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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수난 성 금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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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균태 쪽지 캡슐 작성일2002-03-29 조회수2,019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2년 3월 29일 성 금요일

 

 

 

신학교에서는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 아침까지 월례 피정을 한다.

 

월례 피정을 하면서 신학생들은 지난 한달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반성하고,

 

 또 다음 한 달을 계획한다.

 

몇 학년때인지, 피정 지도 신부님이 누구셨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사순시기,

 

특히 성주간을 의미있게 잘 보낼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피정 강의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 신부님은 해마다 성주간이 되면,

 

 수난복음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중에 나는 과연 누구와 비슷할까?

 

하며 매일 하루에 10분에서 20분 정도를 묵상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방법이 당신 자신에게는 성주간을 참 의미있게 보낼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 신부님의 피정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는,

 

나도 해마다 성주간이 되면, 수난복음에 나오는 인물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떠올려 본다. 어떤 때는 베드로를 보고

 

"저 사람도 예수의 제자"라고 고발하는 한 여인이 내가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예수에게 침을 뱉고, 예수를 때리고 발길질하고,

 

예수를 능욕하는 로마병사들이 내가 될 때도 있다.

 

또 때로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보고 온갖 야유를 퍼붓는 사람들이 내가 될 때도 있다.

 

올해에는 빌라도의 말과 행동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빌라도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유대 총독으로 있는 동안은 큰 문제거리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빌라도.

 

그래서 예수의 재판에 있어서도 귀챦케 여기는 빌라도,

 

백성들에게 자기 손을 씻는 것을 보여주면서 "너희들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빌라도.

 

예수의 죽음과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선언하며,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빌라도,

 

이 빌라도가 올해 성주간에는 유난히 나를 잡아 끌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는 지난 사순 시기동안 이런 류의 노래들을 참 많이도 불렀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수난하고 죽었다."

 

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라고 예수를 부르면서

 

기도도 참 많이 드렸다.

 

그런데, 이런 류의 노래를 부르고, 기도도 하고 하지만,

 

예수의 죽음에 대해 늘 죄책감을 느끼거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나를 뒤흔드는 등

 

늘 나를 못살게 굴고 있지는 못함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2000년 전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예수에게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달라고 부탁해 본적도 별로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예수에게 죄책감과 죄송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 죄가 그렇게도 무거운 것인가?

 

도대체 내가 죽을 죄를 지을 만큼 큰 죄를 지었나?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수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솔직히 나는 싫다.

 

한번 세상에 나서 그렇게까지 바보같이 살고 싶지 않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그러는데,

 

제 밥그릇은 고사하고

 

 자기 가족들의 밥그릇까지도 퍼다 주어야 하는 그 삶이 솔직히 나는 싫다.

 

 "아버지, 당신은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나 다 하실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울부짖으면 됐지,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하는 예수가 싫다.

 

 

 

가끔씩 예수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했던 빌라도가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철저한 무관심이 부럽게 느껴진다!!!  

 

하느님이자 동시에 인간이었던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냉혹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빌라도가 말이다.

 

나 역시 빌라도처럼 차라리 하느님 당신을 몰랐더라면,

 

나도 하느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무관심했을 거다.

 

그러나, 내 머리가 아무리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떠들어 대도,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전쟁이 일어난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은 아마도 나 역시 인간으로 남고 싶기 때문일거다.

 

한 존재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마음이 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아무리 인간으로 남고 싶어한다 해도

 

내 속에서 일어 나는 전쟁을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의지는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나약하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내 마음 속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나로 인한 것만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내 안에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바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의 죽음은 나에게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심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는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빌라도의 물음,

 

바로 나의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고, 부활은 바로 그 응답의 최상급이 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 이런 하느님이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려 주는 하느님이다.

 

성 금요일이지만,

 

’하느님 내 주시여’ 라는 노래로 하느님께 노래하고 찬미하고 싶다.

 

 

 

하느님, 내 주시여,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십니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나이까

 

 

 

천사들 다음가는 자리에 우리를 고이 앉히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니,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십니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나이까

 

 

 

통틀어 양떼와 소들과 통틀어 들짐승하며

 

새들과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를

 

 

 

하느님 이 모든 것들을 우리게 맡기셨으니

 

어린이 젖먹이들 모두다 당신께 노래합니다.

 

 

 

오오 하느님, 오오 하느님, 당신께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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