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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문(심방) 사목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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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2-05-31 조회수1,911 추천수16 반대(0) 신고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이다.

 

  성모님은 천사의 방문을 받으시고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다. 천사의 방문은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에게는 엄청난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면서도 엄청난 소명을 부여받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우리는 <성모영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지낸다.

 

  천사의 방문으로 영으로 충만해진 마리아는 이제 자신이 방문자가 되어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간다. 자신도 아기를 잉태한 몸이지만 자신보다 먼저 아기를 잉태하고 미구에 출산을 준비해야하는 친척 엘리사벳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처녀 잉태로 인한 친인척들의 야릇한 눈초리가 잠시나마 마리아로 하여금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하튼 천사의 방문을 받은 이로서 마리아는 이제 자신이 방문자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리아의 이 방문은 엘리사벳에게도 엄청난 기쁨이었고 마리아 자신에게도 엄청난 신앙체험의 순간이었다. 엘리사벳에게는 마리아에게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 분의 방문을 받는다는 자체가 더할 수 없는 기쁨이어서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 때문에 불안했던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고 하느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해 주었다. 이는 또한 마리아에게도 엄청난 신앙체험의 계기가 되었다. 마리아는 처녀 잉태라는 사실로 인해 자신을 알고 있는 많은 이들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외면을 당했을 것이고 그러한 몰이해 때문에 하느님이 때론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케 만들었고 자신의 방문을 기뻐 환호하는 엘리사벳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해주셨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막니피캇>을 노래하게 된다. 이제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여러 종류의 방문(visitatio)이 있다. 주교님이 매년 각 본당 사목방문을 하시고, 우리 관구장님도 내년 총회를 앞두고 형제들을 공식방문하고 계신다. 각 단체에서도 상급 기구에서 하급 기구에로 사목, 형제적 방문이 있고, 환자방문, 구역방문 등도 있다. 개신교에서는 방문이라는 말보다는 <심방>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방문자는 먼저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방문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인 것이든 먼저 하느님의 방문을 통해 영으로 잉태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문자의 준비는 그래서 무엇보다도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를 방문하든 내 안에서 하느님을 먼저 만나고 메시지를 받지 않으면 나의 다른 사람으로의 방문은 주님의 파견이 아니라 나의 형식적인 관례가 될 뿐이다. 하느님의 방문을 접한 사람은 또한 주님의 파견을 받아 방문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리아처럼...

 

  그리고 이 방문은 서로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피방문자는 방문자를 기꺼이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이유가 그 방문자는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방문자는 방문자를 하느님 모시듯이 모셔야 한다. 이 때문에 <환영>(hospitality)는 그냥 형식적인 예식이 아니라 하나의 영성화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방문자는 <시찰>하러온 사람처럼 해서는 안된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 감독하는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감시하고 감독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고 봉사해 주는 사람으로 파견하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시찰하러 보내진 것이 아니라 엘리사벳의 출산을 돕고 산후처리를 위해 봉사하라고 파견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전제된다면 방문자와 피방문자의 대화는 저절로 하느님 찬미와 서로에 대한 칭찬으로 일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방문자만이 아니라 방문자도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자, 우리의 방문(심방) 사목의 현실을 어떤가?

왜 우리의 방문이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고 하느님을 서로가 체험하는 계기가 못되고 있는가? 내가 환자를 방문하든, 친구나 친척을 방문하든 나의 방문 준비와 자세를 한번 되돌아보자. 그리고 하느님의 방문을 받든 다른 형제 자매의 방문을 받든 방문을 받는 나의 준비와 자세는 또 어떤지 한번 되돌아보자. 마리아도 되어보고 엘리사벳도 되어보자.

 

  점점 소홀해지고 소원해지는 이 방문(사목)의 의미를 다시한번 정리해보고 우리의 방문(사목)이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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