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슬기로움'과 '순박함'의 균형잡기 | |||
---|---|---|---|---|
이전글 | 식은땀 | |||
다음글 | 사모님 | |||
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2-07-12 | 조회수1,754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연중 제 14주간 금요일 (호세 14,2-10; 마태 10,16-23)
마태오 복음 10장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이 당할 온갖 어려움과 냉대, 심지어는 고발당하고 박해받는 상황까지도 내다보며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고 당신의 심정을 표현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한’ 지혜와 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
성서에서 뱀이 긍정적인 상징으로 나온 것은 아마도 이번뿐일 것 같다. 때가 되면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는 뱀은 고대에는 영적인 지혜를 갖춘 동물로 신성시했었다. 그래서 고대근동지방의 이민족들은 뱀을 숭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창세기에선 뱀을 하느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유혹자로 묘사하고 끝내 하느님에게서 벌을 받게 함으로써 이방종교의 허상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뱀의 원래의 표상인 ’슬기로움’으로 표현하여 위급한 상황에서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것이 ’슬기’임을 강조하신다.
그러나 ’슬기로움’은 이해가 되지만 ’양순함(순박함-새번역)’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사납고 폭력적인 무리들 앞에서 양순하라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는 말씀이다. 살아가면서 폭력적인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응대하는 것은 오히려 더 힘들고 결과도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왔다. 무슨 일이든 적대적인 태도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사심없이 순박하게 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을 때도 많다. 그러나 그때에도 반드시 지혜롭게 처신해야한다.
무조건적으로 순박한 것은 자칫 이용당할 염려가 더 크다. 순박하지 않은 슬기로움은 자칫 교활할 위험이 크다. 양 덕목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은 물론 일차적으로 교회 밖에서 신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비책을 일러주는 것이지만, 오늘의 현실에선 그런 외면적인 박해상황보다는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인다. 사실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교회 안에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더욱 해당하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지혜가 없이 양순함만 가지고 있는 지도자는 곁에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자리가 바뀔 때는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고 사람들에게 고발(?) 당하는 것도 많이 보았고, 총명하기는 한데 순박한 사랑이 없는 지도자도 곁에 끝까지 남아나는 사람들이 없다. 양쪽 다 공동체를 이끌 적합한 인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참다운 지혜와 순박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가 자신의 사욕을 위한 것인지 언제나 성령께 되물어야 하고, 순박한 사람은 그것이 혹시 세상과 인간에 대한 무관심은 아닌지 성령께 늘 여쭈어보아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