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과 나의 인연(연중 15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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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상지종 | 작성일2002-07-13 | 조회수2,210 | 추천수28 | 반대(0) 신고 |
2002, 7, 14 연중 제15주일 복음 묵상
마태오 13,1-23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인연이 있습니다.
많은 인연이 있습니다.
새악시 만남처럼 설레는 인연, 봄볕처럼 다사롭게 다가오는 인연, 가슴 미어지는 인연, 놓고 싶지 않은 인연, 간절한 마음으로 가슴 깊숙한 곳에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인연...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들이 삶을 곱게 다듬어 갑니다. 아름다운 인연들 틈바구니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연들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만으로 다가온 인연들로 있고,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만 했던 인연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인연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벗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인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많은 벗이 함께 하는 것이니, 보잘것없는 나이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부유함에 마음 넉넉해집니다.
이 많은 인연들 안에 나의 가장 소중한 인연이 함께 합니다. 하느님과 나의 인연이 그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맺어진 인연이 아닙니다. 어느 날인가 하느님께서 먼저 인연의 끈을 던지셨습니다.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물론 나 자신은 전혀 기억할 수 없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하느님과의 끈끈한 인연은 내가 나의 작은 삶의 역사를 되새기는 순간 항상 새롭게 내게 다가옵니다.
하느님과의 인연!
언제나 아름다웠던 것만도, 언제나 간절했던 것만도, 언제나 기쁨과 희망 가득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내 작은 곳에 담을 수 없었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살 수 없었기에 차라리 이 인연이 끊어지기를 바랐던 적도 있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하여 살아야한다니... 가진 것을 버려야한다니... 죽어야 산다니...' 알량한 자만심, 삶에 대한 얄팍한 애착에 휩싸였던 때, 인연의 끈을 던지신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말씀'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받아들이며 하느님에 대해, 말씀에 대해, 하느님과 나의 인연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우쭐대며, 오히려 소중한 인연의 끈을 싹둑 잘라버린 적도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나 자신은 때로는 길바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이 파고들 수 없는 단단한 돌멩이가 되기도 하고, 생명을 끊어버리는 가시덤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어느 순간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어리석은 하느님은 어느 누구의 시선에도 굴복하지 않고 좋은 땅만이 아니라 길바닥에, 돌무더기에, 가시덤불에다가도 소중한 씨를 마구 뿌리셨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하느님의 희생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분신인 소중한 말씀의 씨앗을 이렇게 마구 허비하다니...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어리석음이 내게서 많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사제로서 하느님을 기쁘게 했던 순간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내 안에 쏟아 부으신 무수히 많은 소중한 말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도 내일도 어제처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소중한 말씀을 계속해서 뿌리실 것입니다. 비록 내가 그 말씀을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옥한 땅이 아닐지라도, 오히려 말씀을 희생시키고만 말 척박한 땅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겠지요.
조금만 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이고 싶습니다. 순간 순간의 척박함에 그리고 부족함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언제라도 다시 일어서는 나이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나, 소중한 인연의 한 끝자리를 잡고 있는 또 하나의 주인으로서 나를 하느님 닮은 나로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보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가벼운 마음으로 내딛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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